개인채무자보호법, '도덕적 해이' 구멍 숭숭
채무조정 기준 모호…고액 대출 차주 유입 가능
"변제능력 종합적 심사 강화해야"
2024-10-24 06:00:00 2024-10-24 06:00:00
[뉴스토마토 유영진 인턴기자] 개인채무자보호법이 채무자의 연체 이자와 추심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법령을 악용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액 대출 차주의 채무조정을 제한하는 기준이 없다보니 영세 채무자 지원이라는 법 취지가 훼손될 수 있는데요. 채무조정 심사에서 채무자 뿐만 아니라 가구원의 자산 내역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영세 채무자 지원 취지 살려야"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개인채무자보호법)'이 시행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개인채무자보호법과 관련해 형평성, 도덕적 해이 등 법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금융회사와 채무자 간 채무조정, 연체이자 완화, 추심 제한, 채권 양도 및 매각 규제 강화 등 채무자 권한 강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출금이 3000만원 미만인 채무자는 금융회사에 채무조정 요청서, 채무조정안, 변제능력에 관한 자료 등을 제출해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출금이 5000만원 미만이면 연체이자도 완화됩니다. 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전체 채무에 대해 연체이자를 부과했던 관행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개인채무자보호법에 고액 대출 차주 등을 걸러내는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채무자 자산을 은닉하는 등의 법 악용이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개인채무자보호법 32조에 따르면 채무조정 심사는 △개인금융채무자의 자산, 부채, 소득 및 생활여건 등을 고려한 변제능력 △개인금융채권의 회수 가능성 및 비용 △채권금융회사등의 재무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합니다.
 
채무자의 가구원 명의를 활용해 자산을 은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채무 원인, 조정 사유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면서 "개인의 자산뿐만 아니라 가구원의 순자산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연체율 부담 떠안는 금융사
 
채무조정 신청에 고액 대출 차주들도 우후죽순 뛰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금융사가 채무조정 대상을 선정할 때 계좌별 기준을 활용하는데요. 이와 관련해 고의로 소액을 연체한다는 등 악용 우려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이 넘는 대출을 보유하더라도 특정 은행에 3000만원 미만의 소액 대출이 있다면 채무조정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김상봉 교수는 "채무조정 사유가 부적절하게 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법 취지에 맞게 채무조정이 필요한 사람에게 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있도록 심사를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채권 양도가 제한되면서 건전성 관리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르면, 양도시 채무자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엔 양도가 금지됩니다. '채무조정 중'이거나 '세 번 이상 양도된' 채권도 양도가 제한됩니다. 과거에는 채권이 반복적으로 대부업체에 매각되면서 채무자가 과도한 추심 부담을 떠안게 된 경우가 많았던 만큼 채권 양도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채권 양도가 제한되면서 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체율 해소가 더뎌질 수 있단 의견도 나옵니다. 연체율이 늘어난 상황에서 부실 채권 양도까지 제한될 경우 연체율이 상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복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채무자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채권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채무자 보호법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실상환자 대출 위축 우려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으로 채무자의 권리가 강화될 수록 서민층의 대출 위축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금융사로서는 빌려준 돈을 받기도 어려워지고 채권을 매각하기도 어려워지니만큼 차라리 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법안의 적용 대상이 3000만원 이하 대출에 한정되어 있어 금융사들이 이러한 소액 대출을 기피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 자발적으로 변제해주는 법이기 때문에 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여신 회수도 어려우면 소비자에게 간·직접적인 피해가 간다"고 내다봤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실무자들은 은행 업무 중에서도 채무 회수를 가장 부담스러워하는데 더 어려워졌다"면서 "나중에는 대출을 더 까다롭게 하거나 아예 안 해주는 ‘입구컷’ 행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사 관계자들은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으로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서울 시중은행의 ATM 모습. (사진=뉴시스)
 
유영진 인턴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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