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비상계계엄 사태가 6시간 만에 해소됐지만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주력한 금융사들은 고환율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자본 건전성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출 관리에 나설 경우 저신용자와 중소기업 등 자금 수혈이 시급한 차주들의 대출 절벽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계엄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험가중자산 확대 '경고등'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날 새벽 원달러 환율은 1446.5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15일 1488.0원 이후 15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환율은 다소 진행됐지만, 이날 오후 2시를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1414.5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급등한 환율이 쉽사리 안정되지 않으며 시장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은행권에서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자본적정성 지표 하락 등 건전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외화대출은 원화로 환산 후 위험가중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외화대출 평가액도 오르고 이는 곧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이어집니다.
위험가중자산이란 금융기관의 자산을 위험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계산한 지표로, 은행의 안정성과 자본확보 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중 상대적으로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자산이 얼마인지를 따질 수 있는 값입니다.
은행들은 최근 밸류업 정책을 통한 주주환원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요. 이미 주요 금융지주들도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달성하는 것을 주주환원 조건으로 내건 상황입니다.
은행권이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출 관리에 나설 경우 저신용자 등 대출 절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사진=뉴시스)
저신용자 등 대출절벽 우려
문제는 위험가중자산을 억제하기 위한 은행들의 여신 관리가 서민들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위험 가중치가 높은 개인사업자 대출, 중소기업 대출 등을 조이게 되면 서민들의 대출 절벽은 더 높아집니다. 위험가중자산 관리를 위해 은행들은 우량대출 위주로 취급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계대출 공급 정상화에도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은행들은 올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과 무관하게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연말 총량 관리에 돌입했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다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며 금리가 내려가고 대출 취급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고 있는데요.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자금 이탈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15조원 이상 줄었는데요. 미국 주식과 가상자산 등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난 영향입니다. 향후 원화 가치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이같은 이탈 현상도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로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과 불법사금융 근절 등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민생입법 처리도 무기한 연기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으로 정기국회 법안 처리도 '시계 제로' 상황이 됐습니다. 법안 처리를 눈앞에 뒀던 예금보호한도 상향과 금융당국이 내놓은 '불법 사금융 근절대책' 법안이 모두 처리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국회가 당초 10일로 예정했던 본회의는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비상계엄령은 국회 본회의에서 해제됐지만 정치권 내 갈등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계엄령 선포에 대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야당 중심의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면서 정치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전날 정무위원회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예금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대부업법은 미등록 대부업자의 명칭을 불법 사금융업자로 변경, 대부업 자기자본 요건 상향(개인 1억원, 법인 3억원), 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무효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상임위 의결로 대부업법과 예금자보호법의 본회의 처리가 목전에 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으로 모든 일정이 불투명해졌다"며 "탄핵정국으로 이어질 경우 본회의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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