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20일(현지 시간) 미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 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산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 통합을 이루는 사람으로서의 유산일 것이다. 저는 평화 중재자이자 통합가가 되고 싶다"(My proudest legacy will be that of a peacemaker and unifier. That’s what I want to be, a peacemaker and a unifier)
2017년부터 4년간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47대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가 취임하기 하루 전인 어제, 중동의 인질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날 취임사에서 대외정책에 할애된 분량은 많지 않았으나, 그는 취임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정부의 모든 날(every single day) 동안 미국을 최우선에 둘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강조하면서 미국 이익을 중심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겁니다. 약 31분간 낭독한 8300여자 분량 취임사에서 '아메리카'를 41번이나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취임사에서 직접 언급한 국가는 중국과 파나마 두 나라뿐이었는데요. "중국은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는 중국에 파나마 운하를 넘겨준 것이 아니라 파나마에 넘겨준 것을 다시 되찾고 있다"는 대목 등입니다. 그는 취임 이전부터 파나마 운하 재복속, 덴마크령 그린란드 미국 편입, 멕시코만 명칭 미국만으로 변경 등을 주장해 신(新)식민주의, 신제국주의를 추진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취임사에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미 영토확장 의지 피력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 그린란드는 뺐으나 파나마 운하, 멕시코만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 영토 팽창 야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 등을 언급한 뒤 "미국은 영토를 확장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영토 확장은 신이 부여한 운명이라는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명백한 운명) 표현까지 썼습니다.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는 1800년대 미국에서 ‘먼로 독트린 등’ 아메리카 전체 대륙은 확고하게 미국의 '지배권(sphere of influence)'으로 장악해야 한다는 외교정책을 담은 말입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연세대 정외과 교수)은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취임사가 불법 이민 문제 관련 '미국 남쪽(멕시코)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 선포'와 '소수자·다양성 포용 정책' 폐기 등 주로 미국 국내 문제에 대해 강경하고 이분법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내용이었다"며 "대외 정책에 대한 비중은 얼마 안 됐는데, 취임사가 전체적으로 강경한 톤이었다는 점에서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으로 "북한은 핵보유국" 명시적 발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는 북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백악관 집무실에 만난 기자들에게 김정은 총비서에 대해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다. 우리는 잘 지냈다"며 "내가 돌아온 것을 그가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개편된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그는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핵무기를 많이 가진 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언급했으나, 공개석상에서 북한을 명시적으로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한 것은 처음입니다. 역대 북핵 문제에 대한 최종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로 설정한 역대 미국 정부는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주는 핵보유국 표현을 자제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같은 표현을 쓴 겁니다. 앞으로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난 그(김정은)가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해안을 갖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1기 시절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참여했던 한국계 케빈 김이 이번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초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맡게 된 것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 1기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당시 스티브 비건 국무부 부장관, 알렉스 웡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등과 협상에 깊이 관여했는데, 알렉스 웡이 이번에 백악관 국가안보부 부보좌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그가 대북 정책을 관장하는 실무 책임을 맡게 된 겁니다.
대북정책 실무책임자에…북·미 협상 참여 한국계 '케빈 김' 발탁
한·미 관계 전문가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핵보유국' 표현이 북한 핵을 인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인정한 것뿐이라고 피해 갈 것"이라면서 "하지만 북한과 핵군축 협상으로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트럼프 2기 정부가 "단기간 내에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핵 동결과 군축 같은 작은 규모의 협상, '스몰 딜' 형태도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김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 중 '피스메이커' 언급에 대해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스라엘·가자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문제 등 전쟁을 다 멈추게 해서 노벨평화상을 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데, 그는 그것도 피스메이커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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