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반도체 시장의 지형이 넓어지면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이 ‘실탄 장전’에 나섰습니다. 과거 반도체 호황의 직접적인 수혜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D램 공정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고난도 세정·검사 등 공정 전반에 걸친 수요가 커진 만큼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재무 체력’을 강화하고 나선 모습입니다.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에서 관람객이 HBM 실물을 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AI 반도체 설계 기업인 세미파이브는 오는 29일 코스닥에 상장합니다. 수요 예측에 따른 총 공모액은 1296억원에 달합니다. 세미파이브는 이번 상장으로 조달하는 자금을 활용해 동남아 지역 내 엔지니어링 자원을 확보하고, 북미 지역의 원천기술을 내재화해 양산 사업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입니다.
반도체 칩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는 리벨리온은 내년 기업공개(IPO)와 함께 미국 나스닥 상장 가능성까지 열어뒀습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최근 설립 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예비심사 청구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엔비디아와 사각 링에서 싸워 시장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전했습니다.
설계 플랫폼과 팹리스 신성들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자금 조달에 나섰다면 기존 소부장 강자들은 자사주 활용해 재무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금감원에 공시된 반도체 소부장의 자사주 처분 내용을 보면 시장 확대에 따른 연구개발과 시설투자가 주를 이뤘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전문 기업 에스티아이는 지난 19일 운용 자금과 원재료 구입을 위해 자사주 55만주를 처분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반도체 설계자산(IP) 전문 기업인 칩스앤미디어는 17일 자사주 51만1744주를 처분했습니다. 이번 자사주 처분은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을 위한 목적입니다. 칩스앤미디어는 이번 교환사채를 통해 확보한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IP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2026년 60억원, 2027년 40억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 반도체 검사장비 전문 기업인 엑시콘은 신제품 개발과 투자 재원 확보, 재무건전성 증대를 목적으로 66억5722만원 규모의 자사주 44만8388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하기로 했으며 반도체 테스트 공정 핵심부품 기업 샘씨엔에스는 80억490만원 규모의 자사주 113만 3679주를 처분했습니다.
샘씨엔에스는 자사주 처분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신규 시설 투자에 나서는 한편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신제품 개발 등 투자 재원으로도 활용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시장이 커질수록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아져,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소부장 기업들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서버, GPU, HBM 등 핵심 밸류체인에서 수요 가시성이 높고,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AI 설비투자(Capex) 계획을 철회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다”며 “AI를 통해 누가 구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선투자 대 비 수익 가시성이 낮은지에 대한 선별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순히 물량을 공급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제조사와 함께 공정 난제를 해결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해졌다”며 “현재 진행 중인 자금 조달은 K-반도체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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