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굉장히 원만하게 오랜 시간을 거쳐 합의를 이뤄냅니다. 노사 간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32년 무분규를 이룰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회사 최고의 경쟁력입니다.” 지난 2023년 사내 하도급 근로자 900여명을 직고용한
동국제강(460860)은 관계자는 자신감 있게 말했습니다. 철강 맏형
포스코(005490)는 하청 직고용 절충안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 물리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파열음 없이 제도를 현장에 안착시킨 동국제강 사례는 상생 사례로 참고할 만합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업황 악화로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노사가 손을 맞잡고 위기 극복에 성공한 사례 속에 다중교섭시대의 해법이 있습니다.
동국제강이 지난 3월 인천공장에서 개최한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 (사진=동국제강그룹)
서로를 믿게 된 힘, ‘사전 조율’
동국제강그룹(동국제강·동국씨엠)은 지난 3월 주요 철강사 중 올해도 가장 빠르게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체결했습니다. 1994년 선언한 ‘항구적 무파업’ 정신을 어김없이 증명하며 32년 연속 무쟁의 타결 기록을 썼습니다. 화합의 배경에는 투명한 소통과 치열한 사전 합의가 자리합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다들 불황기를 겪고 있는데 회사가 버티는 건 파업 대신 화합의 정신으로 임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청 직고용 추진 당시 사측은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존 정규직 노조와 끈질기게 대화하며 전사적인 동의를 구했습니다. 평소 주요 경영진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 회의에 노조 간부가 상시 동석해 자료를 공유받고, 회사의 전략적 방향성을 함께 인지하는 투명한 시스템도 든든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 대신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투명성’이 강력한 경쟁력임을 입증한 셈입니다.
투명한 정보 공유는 해외 선진 교섭 사례에서도 파국을 막는 핵심 돌파구로 작용해 왔습니다. 일본 토요타는 지난 2024년 춘투 당시 노조의 요구안을 단 1회 교섭 만에 전면 수용하며 2023년에 이어 초단기 타결이라는 선례를 남겼고, 견고한 화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본 교섭 전부터 정기적인 노사협의회를 열고 전기차 전환 투자 비용, 글로벌 경쟁 구도, 영업이익 등 민감한 경영 장부를 노조에 선제적으로 공개한 결과입니다.
독일 지멘스 에너지 역시 거대한 구조조정 위기 앞에서 포트폴리오 재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 파업을 막아낸 사례로 꼽힙니다. 사측은 에너지 시장 격변에 따른 객관적 지표를 노조와 공유했습니다.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배제하고 재교육 중심의 인력 재배치를 합의해 미래협약을 체결하는 ‘유럽식 공동결정제도’의 성공 사례입니다. 사측의 일방적인 앓는 소리나 노조의 파업 으름장 대신, 숫자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합의점을 찾는 교섭 모델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사와 원·하청,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사전 협의와 투명한 소통을 바탕으로 상생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챗GPT)
이젠 CSR 넘어 ‘USR’ 요구돼
투명한 소통과 사전 합의의 중요성은 이제 사측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제언도 나옵니다. 주주와 하청업체, 비정규직까지 이해관계자로 교섭 테이블 주변에 등장한 다중교섭시대에는 노조 역시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 ‘CSR’이 요구되는 것처럼 이제는 노조에도 하청이나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약자를 포괄하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 ‘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기업이 무한대로 이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아닌데 정해진 파이를 두고 갈등만 반복하면 결국 기업 경쟁력과 고용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그동안 비용 절감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몫이 적었던 하청이 분배를 요구할 경우 정규직 노조 역시 일정 부분 연대와 양보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사후 협상보다 ‘사전 룰 세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매년 실적이 나올 때마다 성과급과 배당, 투자 재원을 두고 소모적인 힘겨루기를 반복하기보다, 노사가 미리 성과 배분 원칙을 합의하는 ‘성과공유제’가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이 교수는 “노사 협상만이 아니라 주주와 하청 등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함께 수렴하는 발전된 유럽식 성과공유 모델이 필요하다”며 “노사가 성과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투자와 사회적 책임 재원까지 함께 고려해야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역시 원·하청 노조의 분배 요구를 단순한 비용 증가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직고용과 관련해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은 “원래 하청 구조에는 하청업체 이윤과 관리비가 포함돼 있었던 만큼 직고용 전환 시 줄어드는 비용도 존재한다”며 “직접 고용함으로써 생기는 생산성 향상이나 소속감 등 긍정적 효과까지 상계하면 기업이 망할 정도로 비용이 든다는 건 엄살”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제일 중요한 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이라며 “다자간 협의체라든지 제도를 만들어서 같이 풀어가야 한다. ‘우리 다 같이 잘 지내자’는 마인드가 기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끝>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열린 '2026 민주일반연맹 확대 간부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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