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거래소를 상대로 내린 영업 일부정지 제재가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습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근거로 강도 높은 제재를 내리고 있지만, 정작 법원은 불확실한 제재 근거를 이유로 거래소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거래소 운영 기준과 내부통제, 투자자 보호 등을 포괄하는 가상자산 규제 공백에 발목을 잡히는 모습입니다.
특금법상 '고의·중과실 입증' 실패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가상자산거래소 영업 일부정지 제재에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규제 사각지대 우려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현재 가상자산사업자 규제는 사실상 특금법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특금법은 원래 자금세탁방지 체계 구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입니다. 거래소 운영 기준이나 내부통제, 상장 심사, 이해상충 방지, 투자자 보호 등은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당국은 특금법을 활용해 거래소에 대한 사실상 종합 감독을 수행해 왔습니다.
앞서 지난 29일 서울행정법원은 코인원이 FIU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 일부정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FIU가 내린 3개월 영업 일부정지 처분은 본안 판결 선고 이후 30일까지 효력이 정지됐습니다.
앞서 FIU는 코인원이 특금법상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 금지 의무와 고객 확인 의무 등을 위반했다며 영업 일부정지 3개월과 과태료 52억원을 부과했습니다. 영업 일부정지는 신규 고객의 외부 가상자산 이전, 즉 입출고 업무를 제한하는 조치입니다.
법원은 비슷한 사례인 빗썸과 두나무에 대해서도 FIU가 내린 영업 일부정지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두나무의 경우 본안 소송에서도 두나무가 승소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두나무의 행위를 '고의 또는 중과실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전제로 해 FIU가 내린 영업정지 등의 처분이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특금법상 제재 요건이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어느 범위까지 고의 중과실로 볼지 법률상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FIU는 자체 데이터베이스 구축, 확약서 징구, 거래 모니터링 강화 등 미신고 거래 차단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적극적인 차단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법원에서는 법률에 명시된 의무가 아닌 것을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자금세탁방지 관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법원은 법에 명시된 의무인지를 따진다"며 "행정제재는 결국 법률 원칙에 따라 판단되기 때문에 감독당국 논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부 의무 규정과 감독 기준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 일부정지라는 강력한 제재가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어떤 조치를 해야 의무 이행으로 인정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해 왔습니다.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가이드라인 마련 감감무소식
하지만 당국은 입법 지연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에서 명확한 규정 없이 사후적으로 의무 위반을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셈입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감독당국이 원하는 수준을 맞추더라도 나중에 '더 했어야 한다'고 하면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며 "법원은 이런 불명확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명확한 법률 근거와 세부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래소의 내부통제 의무와 상장 책임, 자금세탁방지 의무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지 않을 경우 향후에도 유사한 소송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잇따라 집행정지 또는 제재취소 소송에서 성과를 내면서 시장에서는 법적 다툼으로 가면 승산이 있다는 인식까지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당국은 그동안 국회의 입법 지연과 가상자산 제도화 미비를 규제 한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청와대와 금융당국, 정치권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기존 금융권과 디지털자산 업계 간 시각이 달라 논의가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 사이에서 핵심 쟁점 정리가 되지 않아 상임위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빠르면 7월 이후 논의가 가능한데 쟁점과 관련해 내부 합의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은행 중심 컨소시엄' 형태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와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문제가 쟁점으로 꼽히고 있지만,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이해상충 방지와 투자자 보호 의무가 대표적인데요. 가상자산거래소가 상장 심사와 거래 중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 상장 심사 절차와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하고, 임직원의 미공개 정보 이용과 내부자 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고객 예치금과 회사 자산을 분리 보관하고 해킹·전산장애 등에 대비한 보안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과 일정 수준 이상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갖춘 자만 거래소를 지배할 수 있도록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사실상 금융시장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시장 운영과 투자자 보호에 걸맞은 내부통제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당국 입장에서도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예측 가능한 규칙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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