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농협중앙회가 범농협 차원에서 내부 감사 조직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자체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농협법 개정을 앞두고 법에 의한 외부 통제 대신 자율적인 쇄신에 힘을 실어달라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데요. 다만 후반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여당 주도로 재편되는 등 농협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자정 노력이 설득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준법감시위 띄우고 자체 개혁 속도
9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전날 중앙회 운영 쇄신과 농업인 지원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한 '농협 대전환'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외부 전문가 중심의 '범농협 준법감시위원회'를 다음 달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중앙회뿐만 아니라 금융·경제지주와 계열사 등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제와 윤리경영 체계를 점검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감사 조직의 독립성을 높이는 한편 퇴직자 재취업 제한을 포함한 인사 제도 개선과 적자 계열사 체질 개선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농협은 내부 농협개혁위원회가 제시한 과제의 80% 수준이 이행 단계에 들어섰다며 자정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농협개혁위가 권고한 16개 세부 과제 가운데 8개 과제를 완료했고 4개 과제는 실행에 착수했다는 설명입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실행에 착수한 나머지 4개 과제의 경우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법 개정 과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자체 개혁 과제를 이행 단계에 돌입했다는 게 농협 자체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농협이 자체 쇄신에 속도를 내는 것은 당정의 농협법 개정 추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법률을 통해 농협의 지배구조와 감사 체계를 바꾸려는 상황에서 내부 개혁 성과를 보여주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의 적정성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취지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농협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개혁안과 당정이 추진하는 개혁 작업은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당정안의 핵심은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조합장 간선제에서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바꾸고, 범농협 통합 감사 기구인 가칭 '농협감사위원회'를 별도 특수법인으로 설립하는 방안입니다. 현재 중앙회 내부에 있는 감사 기능을 떼어내 중앙회와 지역 농·축협은 물론 지주회사와 자회사까지 통합적으로 감사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도·감독 권한을 현재 중앙회와 조합에서 지주회사와 자회사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중앙회 준법감시인에 외부 전문가를 선임하도록 하고 임직원의 범죄행위에 대한 고발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도 정부 개혁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반면 농협의 자체 개혁안은 기존 조직의 틀을 유지하면서 내부의 감사와 준법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감사 조직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인데요. 법적으로 중앙회와 분리된 독립 감사기관을 만드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인근 건물 외벽에 금융노조 농협지부가 내건 정부의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후반기 농해수위 개혁 드라이브
정치권 분위기도 농협에 우호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새롭게 구성된 제22대 국회 후반기 농해수위는 서삼석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전체 1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 위원이 10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7명, 조국혁신당 1명, 무소속 1명으로 구성됐습니다.
특히 서 위원장은 후반기 농해수위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로 농협 개혁을 직접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1차 개혁에 이어 농협중앙회의 경제·금융사업 지배구조까지 손보는 2차 개혁 로드맵을 내놓은 상황에서 국회 논의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여당 내부에서도 농협의 이번 자체 개혁안에 대해서는 일단 싸늘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농협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내부통제 강화와 조직 쇄신을 약속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입니다.
농해수위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개혁안 가운데 농협이 강하게 반대해 온 독립 감사 기구 신설을 막기 위해 자체 개혁 성과를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면서 "자체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이유로 국회에 발의된 농협법 개정 논의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당에서는 농협이 내건 준법감시위원회 역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더라도 중앙회가 만든 내부 기구라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률에 의해 중앙회로부터 조직과 권한을 분리하는 독립 감사 기구와 동일한 수준의 독립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입니다.
농해수위 다른 관계자는 "농협이 자체 개혁안이 그간 농협 기조와 달라졌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특히 독립 감사 기구 문제는 끝까지 반대하면서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는다면 법 개정을 막기 위한 시간 벌기로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농협의 자체 개혁이 설득력을 보이려면 당정안을 수용하면서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체적인 내부통제 강화와 법에 따른 외부 감독은 반드시 양자택일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며 "내부 자정 노력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증받으면서 정부·여당과 감사 기구의 독립성 및 지배구조 개선 방식을 놓고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5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협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공청회에서 원승연(맨 오른쪽) 농림축산식품부 및 민관합동 농협개혁추진단 공동단장이 진술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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