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지욱기자] 부실감독과 온갖 비리로 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금융감독원이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온 담당 직원에 대해 문책이나 징계가 아닌 ‘보직 변경’ 수준의 조직개편으로 파장을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아직 정신 못차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저축은행 비리가 터질 때까지 감독업무를 총괄 담당해 온 금감원 임원은 이번 개편에서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최종 책임을 져야할 전·현직 감독원장 역시 피해고객과 국민에게 석고대죄는커녕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금융권에서는 “범죄행위 등 사상초유의 비리와 부실감독이 드러났는데도 이에 책임을 져야할 감독당국자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자체가 또하나의 비리”라는 반응이다.
◇ 책임 '세탁'해준 조직개편.."명함만 바꿨어요"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전격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8명의 국·실장을 제외한 현직 부서장 55명 중 47명이 교체됐고, 비리혐의 등 문제가 제기된 저축은행 담당과 기업공시 담당 부서장도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번 부실감독과 비리에 대해 직접 책임이 있는 부서의 임직원들이 이번 조직개편에서 받은 불이익은 사실상 별로 없다. 저축은행 검사감독을 책임지는 은행·중소서민 부원장 아래 중소서민감독과 은행·저축은행 검사로 나뉘어 감독과 검사부분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는 설명이지만 오히려 과거 책임문제를 따지기 어렵도록 책임을 '세탁'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저축은행 책임자였던 김장호 전 중소서민금융업 서비스본부장은 명함만 다시 만들면 된다. ‘중소서민감독 부원장보’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 자리와 역할 모두 그대로다.
김준현 전 저축은행 서비스국장은 보직해임됐지만 금감원 총무국 소속 연구위원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현업 담당국의 자문 역할과 교육 등을 진행하게 된다. 보통 1년 이상을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관례상 이 기간에 금융회사 감사 등으로 자리를 마련해 이동해왔다.
이한구 전 저축은행감독지원실장은 뉴욕사무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잘못된 기업 공시로 문제가 있었던 이동엽 기업공시국장은 제재심의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오세정 전 기업공시제도실장도 회계감독2국장으로 이동했다.
이처럼 명함상 책임부서만 달라진 것은 다른 국·실도 마찬가지다. 전보를 받은 25명의 국실장들은 명함의 담당 직위만 달라졌을 뿐 대부부분의 권한은 그대로 유지됐다.
"근원적 DNA를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금감원의 조직개편이 오히려 직원들의 책임을 교묘하게 '세탁'해서 위장시키려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 감독 수장 '무책임' 여전.."권력자 비리 용서 받아선 안돼" 헛말?
금융감독 수장들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취임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저축은행사태에 대해 한마디 사과 없이 지난 3월26일까지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났다.
실질적으로 감독 부실에 대한 수장으로서 책임이 있지만 사태가 터진 것은 퇴임 이후라 별다른 책임 여부가 논의되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달 20~21일 열렸던 국회 정무위원회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정책적인 판단이었으며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지난 4일 금감원을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리는 용서 받아서는 안되며 이에 협조한 공직자 역시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축은행 비리사태 해결에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권력을 가진 자의 비리는 용서 받아서는 안된다"는 대목에서는 MB정부들어 발생한 각종 비리연루 의혹에 대한 결과를 짚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부실감사는 하드웨어(체제)가 아닌 소프트웨어(인력)의 문제"라며 "책임져야 할 사람이 확실히 책임을 지는 문화를 만들어야 선량한 피해자를 만드는 이런 사태를 본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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