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처음 한국사회에 쓰인 것은 외환위기 이후인 지난 2000년부터였다. 몰락한 중산층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등장했다. 2008년 이후 신빈곤층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 내집을 갖고 있지만 삶은 팍팍해진 '하우스푸어', 한평생 일하고도 가난하기만 '실버푸어', 출산으로 더욱 힘들어진 '베이비푸어', 수많은 스펙을 쌓고도 취업이 안돼 고시원을 전전하는 젊은 '스펙푸어' 등 신빈곤층은 자꾸만 늘고 있다. 2011년 말 신빈곤층의 현실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편집자] ④ 실버푸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노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실행해가는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면, 노년의 삶은 낭만과 역동으로 가득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소원을 ‘해치우기’ 위해 주인공들은 타지마할에서 세렝게티까지 종횡무진하고, 카레이싱에 문신, 프로펠러 비행까지 도전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상일 뿐 현실은 정반대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여행경비는커녕 생활비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가구의 35.1%는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 상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빈곤률 14.1%보다 2.5배나 높은 수치다.
# 10년 전 은행을 정년퇴직한 강창성(가명·68세)씨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춘천이나 천안을 찾는다. 65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무상 지하철표를 이용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주일 중 또다른 하루, 이틀은 등산을 가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TV시청이나 음악을 듣는다. 모두 돈을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가끔씩 소일거리라도 들어오면, 무척이나 반갑다. 강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공공기관의 잡초제거일이나 건물청소를 하는 동년배들도 부지기수다.
◇ 실버푸어의 현실..빈약한 퇴직금·연금에 노동시장으로 내몰린다
고용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의 고령자 고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령자 고용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2004년 4.51% ▲ 2005년 4.94% ▲ 2006년 5.48% ▲ 2007년 5.79% ▲ 2008년 7.19% ▲ 2009년 7.41% ▲ 2010년 8.16%로 6년 만에 고령자 고용률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고령자 고용이 늘어난 것에 대해 김수봉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처럼 생활 가능한 연금 수준이 아직 보장되지 못한데다 퇴직금으로 2,3년 버티면 이후에는 노동시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경제상태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노동부의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60세 이상 노인들의 주관적인 경제상태 만족도는 ‘그저 그렇다’는 의견이 3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만족하지 않는 편이다’가 29%에 육박했다.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2.3%로 본인의 경제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노인들이 74%에 달하는 셈이다.
실제로 60세 이상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매우 낮다.
20만원 미만 월소득이 38.5%, 20만원~40만원 미만 월소득은 19.5%의 비중으로 두 계층이 전체소득수준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 고령층 물가상승 부담 더욱 높아져..'고통지수' 타연령층 추월
지난 1년간 국제 원자재 가격과 곡물가격 상승으로 식료품 물가상승률은 전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11.5%를 기록했다.
최근 고물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식료품 가격상승은 타연령층보다 고령층에게 직격탄이 됐다.
식품이나 주거비 등 생계형 소비가 대부분인 고령층에게 가장 큰 소비비중(20%)을 차지하는 것이 식료품이기 때문이다.
이혜림 LG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령층의 고통지수가 8%에 육박해 타연령층을 추월했다”고 진단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계산되는 고통지수가 2000년대 중반부터 크게 증가해 2008년부터는 타연령층(6%대)을 상회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고령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노인인구가 증가해 취업경쟁도 치열해졌다”며 “1990년대에는 1% 미만이던 고령층 실업률이 2000년대 평균 1.5%까지 상승했다가 2010년에는 2.4%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또, 고령층의 명목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9.3%로 타연령층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2000년대에는 전체소득증가율인 5.6%에 비해 크게 낮은 4.1%에 머물렀다.
여기에 실제로 직면하는 높은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하면, 고령층의 실질소득증가율은 2000년대 평균 1.1%로 전체 실질소득증가율인 2.5%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이 연구원은 분석했다.
즉, 물가상승과 실질소득의 감소추세, 높은 실업률까지 더해져 고령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 은퇴준비 기간도 질도 문제
현대경제연구소는 만 55세에 이른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생)가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며, 국내토지의 42%, 건물의 58%, 주식의 2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이 2010년부터 대거 은퇴를 시작하면서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노화고령사회 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지난 2010년 베이비부머 466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노후 대비 저축 금액은 월평균 17만원에 불과하다.
지난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노후생활 필요자금은 최소 3억6000만원이다. 자녀교육과 결혼을 지원하는 경우는 별도로 1억3000만원이 더 필요하다.
또, 은퇴 후 최소 생활비로 월평균 148만원을, 적정 생활비로는 225만원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은 은퇴 이후 월평균 50~100만원을 수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최소생활비 148만원에서 국민연금 수령액 최대금액인 100만원을 빼도 48만원이 남고, 저축금액 17만원을 제외하더라도 매달 30만원 가량의 적자가 나는 꼴이다.
이같은 노후준비 부족에 대해 이지선 LG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사회진출이 늦어지는 청년들 탓에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 자녀에서 원인을 찾았다.
한국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독립시킨 후 본격적으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2010년 기준 8.7년으로 일본에 비해 3년, 미국에 비해 5년 이상 짧다고 이 연구원은 분석했다.
여기에 청년층 취업시기가 늦어지는 추세가 지속되면 은퇴 준비기간은 2030년에 3년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은퇴연령이 낮아지면서 고령층의 재취업이 어려운 것도 은퇴준비의 질을 높이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연구원이 연령별 취업률 변화를 이용해 평균 은퇴 연령을 추정해본 결과, 1990년 61세에서 2010년 61.3세로 큰 변화가 없지만, 일본은 2010년 63.4세, 미국은 63세로 우리나라 은퇴연령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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