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여당을 차치하고서라도 야당의 복지정책을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던 현 정부가 내년에나 도입할 '3~4세누리과정'을 내년 예산안 편성도 전에 올해 정초부터 발표하면서 '무상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때마침 정부는 기획재정부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맞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경고음이 울린 뒤에야 허둥대지 않았는지?"라며 "미래과제를 누군가는 고민하고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야한다"며 재정부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더불어 정부는 이번 재정부의 조직개편을 마무리하고 오는 7월 향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장기비전을 제시할 방침이다.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은 일찍이 지적돼왔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향후 몇 십년을 내다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 재정 로드맵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장기비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7월 발표할 장기 비전의 내용은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내년에나 시행될 3~4세 누리과정을 4월 총선 이전에 미리 앞당겨 발표하는 정부에게 진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은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을 통해 이 같은 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장기 재정 로드맵이자 복지국가 설계를 담은 청사진은 지난 참여정부때 <비전2030>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비전2030>은 수구·보수언론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재원 마련 방안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비판을 받았다. 결국 현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2008년 8·15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전략'을 국가 발전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며 <비전 2030>은 사실상 폐기를 선언했다.(p.86)
그러나 <비전2030>에 대해 그렇게 공격했던 이명박 정부가 미래기획위원회를 통해 2010년 6월 <미래비전 2040>을 만들어 발표했다(p.94)
변 전 실장은 "<비전2030>은 당시 '저주받은 걸작'처럼 외면당하고 조롱받았다. 지금의 복지 논의는 <비전2030>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 뛰어넘기는커녕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중략)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경제를 망친 대통령, 경제 정책에 실패한 정부처럼 비난받았다. 오죽하면 '경제대통령'이란 말이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했을까? (중략)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어떤가? 그들이 펼친 지난 4년의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비참한 수준이다. 참여정부 때보다 못하다. 심하게 말하면 허위 과장 광고로 국민들을 속인 셈이다"(pp..22~23)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참여정부의 경제운용이 한결같이 안정정책"이라고 술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면 현 정부에 대해선 "이해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무엇보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한 경기부양책이다. (중략)이명박 정부는 미국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데도 거꾸로 정반대의 정책 대응을 했다. 추측컨대 소위 '747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 (pp..180~182)
5년간의 중기 재정 계획 수립을 지시한 대통령. 국가 철학에 맞춰 재원 배분을 위해 대통령과 전 국무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1박2일간의 토론을 벌인 대통령. 단기 부양정책을 멀리하고 경제 원칙을 지킨 대통령과 이것을 모두 부정하고 '낙수효과'에 매달려 단기 성장에 집착한 대통령은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전문가는 지금의 재정전략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참여정부 시절 1박2일동안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토론하던 재정전략회의는 없고, 지금은 몇시간 동안 재정부가 브리핑을 하고 관계 장관들이 승인하는 방법으로 형식화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재정전략과 복지를 포함한 국가 비전의 "품격"이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의 서평을 쓰고자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관련한 기사와 서평의 대부분이 신정아 씨 이야기로 가득했다.
"언론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입니다"(2007년 6월 28일 세계시민기자포럼 축하영상메세지에서)(p.79)라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