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대기업들의 그룹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로 도처에서 지탄받고 있다. 정계에선 불공정 거래와 흐트러진 시장질서를 바로잡겠다며 '경제민주화 법안'이라는 칼을 꺼내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이런 비판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계열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사업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일감몰아주기 행태가 임직원의 해외 출장·여행 서비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고, 몰아주기의 정도도 심각하다.
◇재벌그룹, '여행사'는 필수 아이템?
여행객과 출장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공항에서 눈에 띄는 '빨간 모자'는 지난 6월 기준 국내 여행사 중 매출액이 다섯번째로 많은 '레드캡투어' 관계자들이다.
레드캡투어는 LG그룹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의 조카 구자헌 회장이 창업한 여행사로 전신은 1977년 설립된 범한흥산이다. 해외 항공권 판매 알선업을 주력 사업으로 삼았던 범한흥산은 지난 1982년 '범한여행'에서, 2007년에는 '레드캡투어'로 사명을 바꿨다.
레드캡투어는 범 LG그룹의 지정 여행사로 LG그룹을 비롯해 GS그룹, LS그룹 임직원의 '상용 여행'을 전담하고 있다. 상용 여행이란 출장객 대상 여행상품으로 항공과 호텔, 현지일정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레드캡투어의 매출액은 1389억636만원으로 매출의 32%가 상용 출장 서비스를 비롯한 여행 사업에서 나왔다. 또 LG그룹 임직원이 타고 다니는 렌터카는 대부분 레드캡투어가 제공하는 차량으로, 렌터카 사업은 이들 총매출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여행사를 사실상의 계열사로 둔 대기업은 LG그룹뿐만이 아니다.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의 출장 업무는 현대드림투어에서, SK그룹은 투어비스, 한진그룹은 한진관광, CJ그룹은 CJ월디스가 임직원의 상용 여행을 전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벌그룹이 여행사를 계열사로 두고 막대한 양의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드림투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범 현대그룹을 총괄했던 서진항공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며 "모기업인 현대백화점그룹을 비롯해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아산재단 등 범 현대그룹 임직원의 출장은 우리가 도맡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패키지 여행상품도 판매했지만,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용 여행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2009년부터 개인고객 대상 사업을 접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계열사는 아니지만 대기업 그룹 총수와의 인연으로 전 그룹의 출장 업무를 담당하며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도 있다.
지난 1982년 설립된 세중(구 세중나모여행)은 1998년 삼성카드 여행부문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와 삼성프로스포츠단 등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출장부문 협력여행사로 선정됐다.
세중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은 받게 된 것은 천신일 세중 회장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은 물론 이건희 현 회장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중은 삼성그룹 전 계열사 임직원의 출장 서비스와 삼성전자 등의 제품 운송·보관 사업(물류사업) 등을 통해 지난해 80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역량·노하우 부재"..결국 전문 업체에 '아웃소싱'
대기업들이 악세사리처럼 모두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여행사들이 과연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 굴지의 여행사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입모아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대기업이 여행사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대기업이 여행사를 차려놓긴 하지만, 사실상 전문 여행업체들에게 아웃소싱(위탁경영)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여행업이라는 게 마진률이 낮고 노하우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사업이다 보니, 대기업들도 여행사를 차렸다가 금새 팔아버리는 등 업계에 오래 발 붙이질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이 수익을 보려고 일단 여행사를 세우지만, 결국 역량과 노하우가 없어 전문 업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H업체의 영업점(대리점)은 우리가 운영하고 있고, C업체는 우리가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계열사"라며 "이 바닥은 서비스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자생력 있는 대기업 계열사가 많지는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여행업 진출이 1만5000여 영세 여행업체들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기업과 신용카드 겸업업체, 정부투자기관 등의 여행업 진입으로 피해를 보는 영세 여행업체들이 1만5000여곳에 달한다"며 "대기업 등의 신규 여행업 진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광협회중앙회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서비스업종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여행업이 선정돼야 한다"며 "여행업계에 공정경쟁을 안착시켜 '경제 정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각 기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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