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게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상 신규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은행권은 오히려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부실채권 증가로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기업대출 손실이 늘어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신용 리스크가 증가한 상황에서 웅진사태까지 터져 은행권의 순익 감소가 불가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신용위험 큰 폭 증가
한국은행이 지난 4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신용위험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은은 지난 1분기에는 19, 2분기와 3분기는 31을 기록했던 중소기업 신용위험지수가 4분기에 44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신용위험지수는 경제 주체의 부도 가능성이 증가 또는 감소할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100에서 100 사이의 값을 가지며 기준은 0이다.
대기업은 지난 3분기까지 신용위험지수가 한 자릿수를 유지했지만, 4분기에는 16까지 뛰어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대출에 대한 은행권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출태도지수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는 1분기 13을 기록한 이후 하향세를 지속해 2분기 9, 3분기 6, 4분기에는 3까지 떨어졌다.
특히 은행들은 신용리스크가 높은 중소기업 업종으로 도소매·음식숙박업, 건설·부동산·임대업 등과 같은 과밀·취약업종을 지목했다. 이들 업종은 경기에 민감해 경기가 침체를 지속할 경우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웅진사태'로 충당금 날벼락..수익 악화 불가피
여기에 웅진 사태마저 은행권을 덮쳤다.
웅진그룹 계열사에 대한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액은 3조원 규모. 이 중 법정관리가 시작된 웅진홀딩스(3700억원)와 극동건설(3300억원), 극동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5600억원)만 따져도 1조2600억원이다. 부도 직전으로 내몰린 웅진폴리실리콘(3200억원)까지 합하면 무려 1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3개사에 대한 은행권 신용공여액은 8900억원으로 웅진홀딩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4886억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극동건설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이 3022억원, 하나은행 2898억원, 산업은행 2518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들 은행은 20~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충담금으로 추가 적립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권 "최대한 조여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은행권은 리스크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기업대출이 약 96조원에 이르는 우리은행은 대출기준 강화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일 리스크심의회를 열어 자기자본의 1%를 초과하는 대출을 할 경우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에서 2000억원 초과 대출을 받을 경우 강화된 심사기준을 적용받는다.
KB국민은행도 음식ㆍ숙박 등 경기에 민감한 내수업종의 대출을 줄일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최근 영업점 경영평가지표(KPI)에 '포트폴리오 개선도' 항목을 새로 넣고 부실 위험이 큰 대출 자산을 줄여 은행 건전성을 제고키로 했다.
국민은행은 하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중 상환이 어려울 경우는 최대한 회수하고 연체율이 높은 자영업, 소기업 분야의 신규대출을 대폭 축소할 계획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고 하반기 신규대출을 줄일 계획이다.
◇금융당국 압박 지속..은행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인 은행권을 계속 질타하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지난 7월 기준 은행권의 중소법인에 대한 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2000억원 줄었다며 실적이 부진한 은행을 독려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규 수익원이 없는 상황에서 경기 부진으로 인한 리스크가 커져 어쩔 수 없다"며 "건전성을 포기하면서 까지 대출을 늘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실 가능성이 높은 대출은 정리하고 고위험군에 대한 신규 대출은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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