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사회분위기'란 한 사회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
들을 범주 안에 삽입하느냐 제거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사회분위기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한다. 지금은 통용되는 것들이 언젠가는 비난의 대상의 될 수 있고, 한국에서 허용되는 것들이 외국에서는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분위기에 구성원들이 얼마나 휩쓸리느냐다. 지금 당장 범주에 벗어났다고 아예 밀어내거나 더 작은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내려 한다면 혼란에 빠지기 쉽상이다.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허둥대는 모습, 최근 은행권의 움직임이 그렇다.
지난 7월 한 은행이 대출금리에서 학력에 따라 차등을 두면서 사회 비판이 고조됐다.
개인별 학력차이가 신용평가 기준에 들어가 있어 고졸 출신 고객들이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사회분위기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고객평등을 도외시했다는 이유로 은행권 전체가 뭇매를 맞았다.
모든 은행들은 일제히 고객을 학력이나 나이, 장애, 출신국가, 혼인여부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도록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은행장 회의를 열고 은행 이용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방지하는 모범규준을 마련해 시행키로 했다. 또 각 은행은 모범규준에 따라 연말까지 신용평가 모형과 약관, 상품설명서 등을 점검해 불합리한 조항을 개선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개별 은행의 자체 개선조치를 살펴본 후 내년 초 현장 점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태의 근원이었던 데다, 큰 틀인 연합회가 마련한 모범규준에 학력차별 금지가 포함돼 있는 만큼 신용평가기준에서 학력 정보는 일제히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연합회는 학력은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신용평가지표로 외국에서도 차별금지사유로 규제하고 있지 않으나, 최근 학력차별 근절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을 고려해 차별사유에 포함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력이 높을수록 금융관리 능력 및 금융시장 참여도가 높아 양호한 신용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검증됐다. 여러 학자가 학력이 신용평점을 높이는 것으로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금융연구원 역시 학력이 높을수록 상품 선택이나 신용도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사회분위기 때문에 학력정보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제외한다는 은행권의 대응이 무책임하게 비춰지는 이유다.
왜 학력정보를 사용했는지, 얼마나 어떻게 차별을 두었는지, 다른 정보 요인들과의 변수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설명하지 않은 채 겁먹고 뒤로 내빼는 꼴이다.
그렇다면 학력, 나이, 혼인여부, 장애 등 사회적 차별이라고 생각되는 요인들을 모두 제외하고 어떻게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겠다는 말인가.
직업, 재산, 소득은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없는가. 추후에 이런 것들 조차 사회분위기가 용인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범주를 줄일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은행들은 차별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 그리고 차별이 있어야 한다면 무엇을 위한 차별인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한 후 범주를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공개하고 타당한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나 허용될 수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불합리한 차별금지도 중요하지만 고객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금융서비스 이용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역시 금융소비자보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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