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23개 펀드(13개 운용사), 설정액 8300억원.
제도 도입 1년6개월을 맞은 한국형 헤지펀드 규모다. 지난 2011년 말 상품 출시 당시 12개 펀드(9개 운용사), 1490억원에 비해 각각 2배와 6배 가까이 불어났다.
본격적인 ‘큰 장’은 올해부터 열렸다. 한국형 헤지펀드에 대한 트랙레코드(누적 실적)가 없어 눈치만 살피던 증권사들과 대형 자산운용사, 일부 투자자문사의 동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생력을 갖춘 토종 헤지펀드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성장한 외형에 비해 여전히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등장한 21개 펀드 가운데 절반인 10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은 손실률이 10% 내외에 달한다. 선발주자로 참여했던 일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한국형 헤지펀드를 청산하는 결정적인 계기다.
1년 만에 돌파했던 1조원 벽도 무너졌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은 현재 8300억원 규모다. 올해 1월 말 집계된 1조800억원에 비해 무려 250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헤지펀드의 투자종류와 전략, 매니저 능력과 경험치 등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점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의 외형 경쟁이 본격화하더라도 시장 확대와 무관하게 활성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헤지펀드는 사실상 기존 사모펀드와 별 차이가 없다. 마켓뉴트럴 전략(시장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주가지수선물을 매도함으로써 시장 위험을 제거하는 방식) 등을 통해 수익을 내온 점이 그렇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에 한정한 롱숏 전략 위주의 기술은 수 십개 전략을 담은 글로벌 헤지펀드와 극명한 수준 차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시장이 40여개 국가의 주식과 채권, 외환시장을 골고루 네트워킹하는데 반해 국내 헤지펀드는 투자자산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는 “정책적 문제로 인한 진입장벽도 문제지만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인력에 비해 경험이 확연히 적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시장 정착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소위 ‘치고 빠지기식’ 운용에 대한 우려도 한 몫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국내 업계가 내놓은 헤지펀드 단위는 대부분 100억원이다. 1000억원 단위 펀드는 찾을 수 없다”며 “일단 태핑(사전 수요조사)부터 해보겠다는 차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100억원짜리 헤지펀드 10개를 띄워 성과를 낸 1개 펀드의 트랙레코드만 가져가는 형식이라는 설명이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안착화를 위해선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는 “다양한 기초자산에 투자하는 헤지펀드의 경우 통화상관관계나 그 폭을 통해 트레이딩하는 것이어서 포지션 정리에 시간이 걸린다”며 “헤지펀드 수익률이 원칙상 비공개라는 점도 셈법 빠른 국내 투자자들이 안도할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적어도 한 분기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년간 집적한 운용전략이나 포트폴리오는 매니저만의 비공개 노하우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헤지펀드 설정액 규모가 빠진 것에 대해 “제도 변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들어 금융투자업계가 헤지펀드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등 시장이 모처럼 기지개를 펴는 과정에서 생긴 일시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전략의 다양성과 해외인력 영입 등 업계의 노력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기관들은 대개 위탁 과정에서 3년 정도 쌓인 트랙레코드를 요구하는데 지금은 그 중간 시점이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시장 선진화가 가능토록 지원할 예정이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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