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공정위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쳤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업무보고와 비슷한 내용이었고 노대래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강조한 내용은 생략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노 위원장이 청와대에서 '201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 했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대기업 집단의 폐해 시정, 경제적 약자를 위한 경쟁기반 확대, 담합 관행 척결, 소비자가 주인 되는 시장환경 조성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 권익보호’와 ‘경쟁촉진’은 공정위 단골 메뉴?
그러나 이 중 일부 내용은 공정위의 과거 업무보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적 약자위한 경쟁기반 확대'와 '소비자가 주인되는 환경조성' 등은 단골로 언급됐다.
실제로 공정위의 2011년도 업무계획에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경쟁촉진'과 '소비자권익 제고'가 중점과제로 언급됐고, 2012년도 업무계획에서는 '반칙없는 시장만들기'와 '소비자의 힘 키우기'가 핵심 정책대응 과제로 선정됐다.
중점과제별 세부과제도 마찬가지다. 노 위원장은 소비자 정보제공을 확대하고 동의의결제를 도입하며 가격담합에 대한 감시와 실질적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 업무보고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다.
또 가맹본부의 불공정 관행을 없애기 위해 가맹점과 핫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2012년 업무보고에서 하도급 업체와 핫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과 비슷했다.
원론적인 내용도 있었다. 담합척결을 위해 과징금 감경사유와 비율을 조정하고 실질부과율 높이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명시돼지 않았다. 대·중소기업 공정거래 문화 확산을 위해 협약체결을 이끈다고만 했지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한다는 건지도 언급되지 않았다.
◇전속고발권 유지, 전관예우 금지 등 노 위원장 강조사항 빠져
노 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언급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단순 폐지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노 위원장은 "6월중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노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공정위 간부들의 전관예우는 경제민주화의 걸림돌이고 조직의 신뢰에 흠집을 낸다"며 "윤리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가맹본부의 횡포와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없애기 위해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생각하고 있다"던 청문회 발언의 내용과 관련된 업무도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일 경우 총수 일가가 부당내부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법안도 생략됐다. 일감몰아주기 법안은 입법 논의부터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던 내용이다.
◇박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으로 후퇴?..눈치보기 바쁜 공정위
이에 따라 공정위가 박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추진을 두고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며 "자꾸 누르는 게 경제민주화는 아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업무보고를 두고 공정위가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공정위가 그동안 경제검찰이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정치권과 재계의 눈치를 봐온 측면이 크다"며 "업무계획이 매년 비슷하거나 세부계획이 원론적인 것도 최근 경제민주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기업 내부거래 조사국을 부활시키는 등 대기업집단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각종 계획을 수립한 것은 높게 평가됐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아주 잘 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근절하고 유통가맹분야의 불공정 거래를 없애려는 방안들은 역대 공정위 업무계획 중 가장 구체적이고 강화됐다"며 "공정위가 선심쓰기나 봐주기 없이 원칙을 세우고 경제민주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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