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박근혜정부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야심차게 내세운 ‘대국민 채무 탕감 프로젝트’ 국민행복기금은 접수 한달만에 신청자가 11만명을 넘어섰다. 채무로 고통 받아 온 서민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채무 대상자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혜대상 확대에 나서고 있어 ‘땜질 대책’이라는 지적도 면치 못하고 있다.
◇수혜자 320만명에서 32만명으로 대폭 축소
지난달 30일 현재 국민행복기금 신청자는 12만2829명으로, 가접수 기간이었던 지난 4월22~30일 동안만 9만3968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흥행면에선 성공한 셈이다.
국민행복기금은 1억원 이하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빚을 50%(기초수급자 등은 70%) 감면해주고 최대 10년에 걸쳐 나눠 갚도록 채무를 재조정해 주는 제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180여만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와 민간자산관리회사 등이 보유하고 있는 140여만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 등 약 322만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채무조정 대상자는 67만여명으로, 그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32만6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공약의 1/10 수준으로 대폭 쪼그라든 것이다.
당초 18조원 규모로 조성하겠다던 국민행복기금은 실제로는 8000억원 규모(연체채권 매입비용)로 출범한데다 성실채무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감안해 채무대상을 1억원 이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한 사람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문제점 드러나자 채무대상 범위 잇달아 ‘확대’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26일 제2금융권의 연대보증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이 담긴 ‘연대보증 폐지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연대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은 사람도 국민행복기금 지원요건을 갖추면 기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했다.
당초 국민행복기금 대상에 연대보증 채무자는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자기 빚진 사람도 탕감해주면서 남의 빚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을 구제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서둘러 국민행복기금 대상자를 확대한 것이다.
정부가 수혜대상을 늘려갈 때마다 행복기금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행복기금 수혜대상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
국민행복기금 무한도우미 TF를 발족해 행복기금 신청자 중 연체 기간이 부족하거나 협약이 안된 대부업체 등에서 돈을 빌려 행복기금 대상에서 제외된 채무자들도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채무조정 신청자가 예상보다 늘어나더라도 재원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차입, 유동화증권 발행 등으로 추가 소요비용을 조달하고 차입금 등은 향후 채권회수를 통해 상환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 형평성 논란`은 여전한 과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민행복기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국민행복기금은 특혜나 단순한 복지프로그램이 아니라 한번 실패한 서민들의 재도전의 기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금융정책이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시비가 없도록 세심하게 운영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안 갚고 버티면 정부가 탕감해 줄 것이란 믿음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농협,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연체율은 전분기보다 0.7%포인트 가량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카드사들도 연체율이 평균 0.2%포인트 상승하며 일부 카드사 연체율은 3%대를 넘어섰다.
가계 사정이 녹록지 않음에도 원금을 꼬박꼬박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과 금융기관에서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극빈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행복기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슬픈 대책으로 사회적 편가르기를 양산하고,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약자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대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저소득층 중 대출 받은 적이 없는 가구가 255만 가구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대출이 필요하지만 소득이 적고 신용등급이 낮은 등 재무 상태가 부실해 대출을 받지 못한 극빈층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슈에 따라 국민행복기금이 대상자가 자꾸 늘어나는 것은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며 "통합도산법 개정 등을 통해 채무자의 경제활동 복귀를 돕고, 기다리면 탕감받을 수 있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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