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불황의 늪에 허덕이던 조선업계가 대반격에 나섰다.
상위 조선소들을 중심으로 대형선박 시장을 독식한 데 이어 '제값받기' 채비를 차렸다. 근간은 기술력. 중국의 저가공세와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간 저가수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조선업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던 점을 감안하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업황 회복의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울러 2008년 호황기 이후 내리 침체를 겪으면서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된 만큼 조선업 회복 시기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술력을 갖춘 상위조선소에 세계 선박 발주량이 집중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조선업의 저가수주 탈출 조짐이 보이고 있다.(사진제공=삼성중공업)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상선 발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48.1%(DWT기준) 증가했고, 중고선 거래량은 41.5% 늘었다.
선박 발주량이 늘면서 상위 조선소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다.
아직 선박 공급 과잉 현상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드릴십,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과 연비 효율이 높은 에코십 발주가 늘고 있는데다, 이들 물량 대부분이 상위 조선소에 집중됐기 때문.
이에 따라 상위 조선소들의 수주잔량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 조선소들은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위 15개 조선소의 경우 2010년 7월 36.9%였던 수주잔량 비중이 현재 43.7%까지 상승했다.
반면 2008년 7월 기준 620개에 달했던 글로벌 조선사 수는 현재 474개로 대폭 줄었다. 침체기를 겪으면서 상위 조선사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활발했던 덕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형선박 시장에서 두드러졌다.
올 상반기 기준 클락슨에서 집계한 글로벌 조선사 474곳 중 2011년 2만5000CGT 이상급 선박을 수주한 조선사는 42개사에 불과했고, 이 숫자는 올 들어 34개사로 줄어들었다.
3만5000CGT 이상급 선박을 수주한 조선사는 2011년 20개, 2012년 17개, 2013년 상반기에 18개로 감소했으며, 5만2000CGT 이상급 초대형 선박의 경우 2011년 10개, 2012년 9개, 2013년 상반기 9개에 불과했다.
6월말 기준 국내 빅3 조선소의 수주잔량은 약 87조9000억원으로, 이는 2년치에 가까운 물량이다.
여기에 옵션 물량까지 더해질 경우 올해 수주 물량은 2015년 하반기나 돼야 인도가 가능할 정도기 때문에, 굳이 저가수주에 매달리지 않아도 도크 운영에 별 문제가 없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스콜피오탱커스가 발주한 11만4000DWT급 LR2탱커(Long Range급 유조선) 4척의 건조의향서를 체결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계약을 포기했다.
업계에 따르면 스콜피오는 올 초 현대삼호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에 척당 5000~5200만달러의 가격으로 LR탱커를 발주한 바 있다.
스콜피오는 이를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에도 척당 5200만달러의 선가를 제시했지만 삼성중공업이 책정한 5700~5900만달러에 미치지 못해 결국 수주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제작에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 수주할 수 있는 조선소는 한정돼 있는데다 최근 들어 발주량이 늘면서 도크를 미리 예약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선표예약계약(Slot Reservation Agreement)이란 선박 건조를 전제로 조선소의 도크를 사전 예약하는 계약제다.
러시아 가스기업 노바텍과 프랑스 정유기업 토탈이 발주하는 선박은 기존 LNG선에 쇄빙기능을 더한 선박으로 아직 건조된 적이 없는 선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쟁사에 비해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기술력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평가 덕에 경쟁사들을 제치고 선표예약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드릴십, LNG선 등 고부가 선박 발주가 늘면서 국내 대형조선사들이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며 "일정 부분 수주잔량이 채워진 만큼 하반기부터는 저가수주에서 벗어나 수익성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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