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법무부가 지난달 내놓은 상법 개정안이 경제계의 높은 반발에 부딪혔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물론이고 업종별 연합회까지 무려 19개 경제단체가 처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16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는 기업 지배구조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19개 경제단체를 대표해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건의문'을 발표했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항목들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계 기업들에게 경영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상법 개정안의 5가지 항목은 현 시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며 "이미 일부 규제와 장치들이 있으니 현행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는 22일 '상법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건의안'을 발표했다.(사진제공=전경련)
경제계가 상법 개정안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면 최대주주가 5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경제계는 여기서 2대, 3대주주들이 기존 보유하고 있던 지분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계 펀드나 연금기금 등이 2~3대 주주로 있을 경우 이들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커져 대주주가 경영권 방어에 취약해지면서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전경련은 상법 개정안 통과시 역차별이 발생할 만한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거부했다.
이들은 또 소수주주권 보호나 감사권의 독립을 위한 장치가 이미 20여가지 도입돼 있는 상황에서 이 장치들이 안착되기도 전에 또 다시 법을 개정해 '누더기 상법'을 만들 필요가 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외국계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 간섭이나 위협을 막을 수 있는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필' 등의 제도가 국내에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것은 악용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의 내용과 경제계 의견.(자료=전경련, 법무부)
이날 경제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 때문에 기업들이 장기적 투자나 연구개발(R&D)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국내 기업 경영권을 흔들어서 외국계 펀드 좋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반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편 이날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를 확대키로 결정했다. 1845건의 기업활동 규제 중 1650건을 손질해 597건(32%)에 대해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했고, 228건에 대해 네거티브 수준의 규제 완화, 825건에 대해서는 규제의 존치나 개선 필요성을 주기적으로 검토하는 일몰규제를 적용키로 결정했다.
전경련은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며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다만 기업경영 규제 완화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상법은 다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경제계 사상 최대인 19개 협회가 이번 공동건의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숫자만 부풀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경련은 이에 대해 "실제로 참가를 원한 협회가 정말 많았고 단체 성격이 맞지 않는 곳은 배제할 정도였다"며 "이만큼 많은 단체가 참여한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