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금융시장 무한 경쟁 속으로", "막오른 금융대전". 1990년대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처럼 국내 금융판도를 뒤흔들 세력으로 주목받았다. 세계적인 금융유통망과 선진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계은행들의 등장에 국내 금융시장은 기대와 우려섞인 시선으로 그들의 행보에 주목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외국계 은행의 입지는 당초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좁아졌다. 뉴스토마토는 국내 금융시장의 외국은행의 위치와 앞으로의 판도 등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국내에 지점을 둔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업을 축소하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국내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단 판단에서다. 국내에 은행법인 인가를 가지고 있는 SC은행과 씨티은행도 몸집을 줄이고 있다.
지난 1967년 외국은행 국내지점(이하 외은지점)은 체이스맨햇턴은행 서울지점을 효시로 국내진출이 시작됐다. 이후 1993년에는 외은지점이 74개까지 증가하며 정점에 치달았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참여를 적극 유도함에 따라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진출도 활발해졌다.
이로써 1997년 당시 4.2%였던 외은지점의 시장점유율도 2005년에는 7.5%로 확대됐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외자유치활동, 외국인 개방정책 등에 따른 결과다.
2005년 당시만 해도 HSBC은행이 인천, 대구, 대전에 각각 지점을 신설했으며, 직원 수도 2배 넘게 확충했다. 같은 해 모간스탠리와 중국교통은행도 연달아 국내에 지점을 열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를 떠나는 외은지점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2009년 51개였던 점포수는 지난해말 기준 39개로 3년 사이 12개 점포가 빠져나갔다.
지난달 HSBC는 국내 11개 지점가운데 소매지점 10곳을 폐쇄키로 결정, 기업금융지점 1곳만을 국내에 남겨뒀다.
<외은 점포 현황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소매금융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포화상태를 넘어 위험상태로 가면서 수익성이 있는 시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 은행법인 인가를 가지고 있는 외국계 시중은행인 SC은행과 씨티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내법인을 가지고 있는만큼 국내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수익확보를 위해 몸집을 줄이고 있는 것.
한국씨티은행은 올 상반기 15개의 점포를 폐쇄한 데 이어 지난달 3개의 점포를 추가로 없앴다.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지난 2009년에 시작한 퇴직연금 사업도 지난해에 대폭 축소했다.
SC은행의 모회사인 SC금융지주 역시 계열사인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SC은행은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된 퇴직연금 사업 정리키로 했다.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든지 2년만에 내린 결정이다.
SC은행 관계자는 "비핵심 금융을 정리하고 은행을 중심으로 한 핵심비즈니스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이후 외국금융기관이 경영악화에 직면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적극 진출했던 사업영역을 점차 축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문박 L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금리가 이어지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과거와 같이 호황을 누리는 외국금융기관은 없다"며 "영업축소는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과 본점의 경영악화가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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