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공작정치의 그림자'..채동욱은 시작일 뿐이다
2013-09-16 17:22:13 2013-09-16 17:25:52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1999년 8월 옐친 전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발탁될 때만 해도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바 없는 측근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옐친의 정치적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서면서 탄탄한 신임을 얻었고 결국 옐친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권력을 한손에 쥐게 됐다.
 
그가 옐친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된 계기는 러시아 검찰총장이었던 유리 스쿠라토프에 대한 성공적인 '정치공작'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푸틴이 KGB의 후신인 FSB의 국장으로 있을때 당시 스쿠라토프 검찰총장은 스위스의 한 건설회사가 크렘린궁의 보수공사를 수주하는 댓가로 크렘린 핵심 간부들에게 100만달러 이상의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한창 수사중이었다.
 
스쿠라토프는 또 옐친 가족과 그의 주요 측근, 고위 공무원들의 직권남용 혐의도 잡고 수사하고 있었다.
 
스쿠라토프가 권력형 비리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던 그 시기는 건강 악화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옐친이 급속히 정국 장악력을 상실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옐친과 그 주변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정권에 회복이 힘든 상처를 주게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이때 나선 것이 FSB의 푸틴이었다. 99년 3월 러시아 RTR-TV는 스쿠라토프로 보이는 남자와 접대부 여성들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전격적으로 방송한다.
 
난데없이 터져나온 이 성추문은 러시아 정국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스쿠라토프는 4월 정식으로 기소됐으며 옐친 대통령은 검찰 명예훼손과 직권남용의 이유를 들어 그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검찰총장 해임권한이 있는 연방의회에 그의 해임안을 상정했다.
 
이 성추문 비디오는 스쿠라토프의 재판을 맡았던 모스크바 법원에 증거물로 제출되는데 제출자의 명의가 바로 푸틴 당시 FSB 국장이었다.
 
스쿠라토프는 모스크바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기소 취하 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끝내 검찰에 복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성추문 파문과 함께 옐친 세력에 대한 권력형 비리 수사도 흐지부지됐다.
 
크렘린과 정보기관이 작당한 '옐친 구하기 작전'은 이렇게 성공리에 끝났다.
 
막장 정치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 사건은 정권유지를 위해 최고권력자가 정보기관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를 잘 보여준 적나라한 사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파문 역시 이 사건과 얼개가 대략 들어맞는다.
 
박지원 의원은 16일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정원 2차장이 채 총장에 대한 사찰을 진행해 왔으며 이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공유하고 있었다고 전격 폭로했다.
 
이 폭로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정원은 진작부터 채 총장을 찍어내려는 목적으로 그를 사찰했고 심지어 이를 채 총장의 지휘하에 있는 검찰 간부와도 공유했다는 것이 된다.
 
러시아처럼 극단적 방식은 아니지만 박 의원의 주장에 따른다면 혼외자 논란에 휩싸인 채 총장도 '더러운 공작'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채 총장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깊은 상처를 준 '원죄'(?)가 있다.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밝혀내고 선거법 위반으로 직원들을 기소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 오로지 국민의 지지만이 아니라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라는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는 유력한 근거가 됐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되자마부터 지금까지 내내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한 보수언론이 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제기했고, 논란을 거듭한 끝에 의혹이 사실무근인 쪽으로 판가름이 난다고 보이는 순간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함으로써 결국 채 총장을 낙마시켰다.
 
채 총장의 낙마 과정은 박근혜 정부에 찍힌 고위 공직자들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신호로 작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풍기는 음습한 공작의 냄새는 그 어떤 사정이나 감찰보다도 강력한, 공직사회에 대한 공포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런 일이 검찰총장으로 끝인가다.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게된 '공작세력'들이 이제 고위 공직자나 유력 정치인뿐만 아니라 야당과 시민사회 등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해서도 칼날을 들이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군사정권시절 우리는 집권자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거나 심지어 죽음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권력자들이 일순간 부정 축재(蓄財)나 축첩(蓄妾) 같은 오명을 뒤집어쓰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제 그런 시대가 불행했던 지난 과거가 아니라 언제 또 생길지 모를 현재진행형이 되어 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야만 사회로의 후퇴는 막아야 한다.
  
이호석 정치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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