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어렵다. 징벌적 과징금으로 충분하다고 본다"(신제윤 금융위원장, 지난달 23일 정무위 전체회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지난 18일 국정조사 청문회)
고객정보 유출사태가 터진후 정치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자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다소 유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원론적인 검토에서 한발짝 더 움직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3일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고 재발방지대책 발표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신제윤 금융위원장 (사진=뉴스토마토DB)
◇정치권·시민단체 잇단 압박..당국, 입장선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간 금융위는 징벌적 손배제가 민법과 상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입법자체를 꺼려해 왔다.
민법 393조에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선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이라는 단어는 법적 용어가 아닐뿐더러 '과잉금지의 원칙'과도 모순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출사고가 재발했을 때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검토가 가능하다"면서도 "국회에서는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요구하지만 아직까지 당국에서는 과징금제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고려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2일 카드사 정보유출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면서 금융사 매출액의 1%에 달하는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매출액의 기준이 '불법'적인 정보활용과 관련된 매출액에 대해 부과하게 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금융당국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신 위원장은 "관련 매출의 1% 과징금은 사실상 상한선이 없다는 뜻"이라며 "규모에 따라 징벌적 과징금이 1000억원을 넘을수도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당국의 강한 제스처에도 금융소비자 시민단체와 정무위원회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김기준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이 사전예방 대책이자 가장 효과적인 피해보상 제도"라며 "각 금융사는 개인정보 보호에 더욱 만전을 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국회에는 여러 건의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관련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미국의 경우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로 인해 기업이 손해액의 10~30배 많게는 100배까지 배상한다"며 "정보유출로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보안을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떨고 있는 금융권..'징벌'제 도입에는 '묵묵무답'
금융권은 당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그야말로 '징벌'에 가깝고 집단소송제 또한 경영활동에 과도한 위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대책발표 때 당국에서 발표한 징벌적 과징금만으로도 제재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융회사도 '이미지 실추' 때문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금융권 또다른 관계자는 징벌적 손배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정보 유출사태의 '원죄'가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의견 표명을 할 순 없다"며 대답을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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