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은 차라리 운이 좋다? 하소연도 못하는 일반인 의료사고
2014-11-04 17:38:51 2014-11-04 17:38:51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가수 故 신해철씨의 사망원인을 놓고 의료사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복부에서 발견된 천공이 서울 송파구 S병원에서 실시한 장협착 수술과 관련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현재 고인 측은 "S병원은 故 신해철씨가 동의한 적 없는 위 축소수술을 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며, 3일 신씨의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고인의 장과 심낭에서 나온 천공은 인위적으로 유발된 손상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故 신해철씨의 사망을 계기로 의료기관의 부주의한 시술과 의료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도 고인의 시술을 맡은 S병원이 제대로 된 검증을 생략한 TV 의료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얻은 점을 지적하며 이런 방송의 부작용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경각심과는 달리 전국에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해 1만명에 가깝다고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월31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숨진 가수 신해철 영결식이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News1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故 신해철씨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유명인이었던 덕에 여론의 동정을 얻었고 억울한 죽음의 책임을 따질 수나 있어서다. 다른 피해자들은 주위의 무관심과 의료기관보다 약한 힘 탓에 잘잘못을 못 가릴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문제점은 국내에는 의료사고의 현황과 원인, 책임 소재 등을 분석한 통계를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환자와 의료기관 간 중재를 주선하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중재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중재가 들어간 의료사고는 총 1391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대법원 통계를 보면 같은 기간 법원으로 접수된 의료사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건수는 1100건으로 나타났다. 중재원에서 중재가 안 될 경우 소송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해 1000건 가까운 의료사고가 책임 소재를 놓고 분쟁을 겪는 셈이다.
 
하지만 의료전문가의 통계는 다르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교수가 2012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2010년 건강보험통계연보 입원 건수가 574만4566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가항력적 사고를 제외하고 예방 가능했던 사망은 약 1만7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측 의료사고 통계가 한해 1000여건인데 이 교수의 집계는 그 10배나 된다. 이처럼 의료사고에 대한 통계가 서로 다른 탓에 의료사고의 원인과 책임 역시 불분명하고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망이 그대로 방치되고 반복된다는 게 의료사고 피해자 측 주장이다.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의료분쟁중재원과 법원이 의료사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이는 사고 사후조치에 불과하다는 것.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막는 게 더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소비자연대로 접수된 의료사고 관련 상담내용(사진=의료소시자연대)
 
의료분쟁조정원과 의료소송이 의료사고의 책임을 분명히 가리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의료분쟁중재원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증상만 고치는 격"이라며 "사고를 낸 의료기관들은 피해자와 서둘러 합의하려 하고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해도 대형로펌을 낀 의료기관을 이길 확률이 30% 미만"이라고 말했다.
 
의료사고를 겪은 피해자가 의료기관에 100% 책임을 물리는 방법은 사실상 소송이 유일한데, 소송 특성상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피해자 측이 의료기관과 과실을 범한 의사 측의 잘못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점도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의료사고 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소송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며 "피해자들은 소송이 힘들어서라도 의료분쟁중재원을 찾는데 이 경우 의료기관이 과실을 범하거나 잘못을 해도 합의만 보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심어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부정확한 검사와 과실 등으로 의료사고가 생길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사고를 강 건너 불구경 할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의료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의료사고가 생기면 의료진의 과실치사보다 어쨋든 환자에게 병이 있어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의 인식인데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며 "정부 역시 환자 안전을 환자 보호자나 의료기관의 책임이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의료법 개정 등 관련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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