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제가 가능한 걸까. 그 명제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우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일지라도 악한 수단이 가져올 해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수단의 해악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융통성 있게 행동한다.
목적과 수단을 고려하고 상황의 맥락을 따져 물어 더 나은 판단을 하고자 한다. 현실에서 중요한 건 복잡한 상황을 재단하는 저 짧은 명제의 형식성이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무엇인지, 상황의 맥락은 어떤지를 따져 묻는 태도와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명제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처럼 여겨지곤 했다. 강력한 공권력에 대항해온 역사 덕에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자,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보장되고 확장되어야 할 보편가치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베의 각종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제이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일베의 어묵 인증사진을 두고 한 부장판사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단 사실은, 저 짧은 명제의 형식성만 충족하면 문제가 없다는 시선을 드러낸다.
◇YTN 뉴스화면 캡쳐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하니까 소수자와 약자를 혐오하는 말도 서슴없이 던질 수 있는 걸까. 표현의 자유는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혐오할 권리인 걸까. 해방 전후부터 87년까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견인하고자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당시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던질 권리만을 뜻하진 않았다. 삶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공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는 문제의식과 깊이 결부된 권리였다.
자유주의의 고전인 밀턴의『아레오파지티카』나 밀의『자유론』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특정한 문제의식과 관련된 말이었다. 밀턴은 영국 의회파의 출판허가명령이 진리의 발견을 막는다며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은 개인의 사적인 삶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다수의 횡포가 만연할 사회를 우려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또한, 밀도 밀턴처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자유로운 토론과 경합 속에서 인간이 진리의 빛을 향해 진보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베의 혐오표현의 자유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억압과 탄압에 맞서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기 위함인가. 진리를 위함인가. 표현의 자유란 소수자나 약자를 조롱하고 비난할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그리고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추구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한 권리였다. ‘표현의 자유’가 가진 핵은 그 명제의 형식성에 있지 않다. 어떤 맥락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냐는 질문, 무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냐는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혐오표현이 유의미한 가치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해명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가 세월호 희생자를 두고 어묵이라 부르는 것까지 정당화해주진 않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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