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정치테마주로 뜨거웠던 한 코스닥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전후의 주가 차트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던 업체인데요. 모 대선주자 수혜주로 뜨면서 차트 화면 상단이 모자랄 정도로 급등했지만, 대선이 끝나자마자 주가는 10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대선 이후 몇 년이 지난 최근에도 바닥을 기고 있구요.
이 기업의 주식담당자와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회사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가 지금도 쉴 새 없이 빗발치고 있다는 겁니다. 다짜고짜 욕을 하며 '주가 관리 왜 안 하냐'고 화를 내기도 하구요, '주가는 계속 떨어지는데 하는 일이 뭐냐, 자사주 매입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따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답니다. 일개 직원이 자사주 매입 같은 중요한 경영 사안을 결정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렇게 '자사주 매입은 주가 상승으로 연결 된다'는 공식이 일반화돼있는데요. 간단히 생각하면, '우리는 회사 주식을 직접 사들일 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주가를 관리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구요. 수급적으로도 자사주를 매입한 뒤 향후 소각할 계획이라면, 전체 유통 물량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뒤, 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인데요. 지난해 삼성전자가 하루 만에 5% 급등했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전날 경영진이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무조건 주가 상승을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는데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업 확장이나 투자에 쓸 수 있는 돈을 단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소모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실적을 봐야한다는 거죠.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가을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당일 주가는 3% 넘게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3분기 실적 실망감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겁니다.
이혜진 기자 yihj07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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