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한은 출입기자들은 한 주 전쯤 성장률 수정 전망치 맞히기 투표를 하는데 이날 기자들의 고민이 깊었다. 대내외 연구기관에서 줄줄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추는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3%대 유지'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서 특히 보수적인 한은이 기존 3.1%에서 얼마나 하향조정할지가 궁금했던 터였다.
결과는 2.8%였다. 기존보다 0.3%포인트나 내려잡은, 생각보다 큰 폭의 하향 조정이었다. 기자들 52명중 10명만 맞출 정도로 예상 외의 결과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척하면 척' 이라는 오명을 달고 살던 한은이 '성장률 3%대 유지'를 고수하는 정부를 외면하고 '쿨한' 성적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한은이 독자적인 성장률 전망 수정치를 발표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둡다는 뜻이기도 했다.
3개월이 지난 현재, 한은의 새로운 성장률 수정 전망치 발표를 열흘정도 앞 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앞날은 더 암울해졌다. 최근 추석연휴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효과로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경기둔화, 수출 부진 등 성장 정체 국면이다. 2%대 성장률 전망을 내놓던 대내외 연구기관들은 더 낮추고 낮춰 2%대 초반 성장률을 예상하는 곳까지 나왔다. 내년 성장 경로도 어둡다. 2년 연속 2%대 중반 성장률에 머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뿐이다.
추세적 성장률을 뜻하는 '잠재성장률'도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3%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곧 2%대로 하락하고, 추후에는 1%때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저성장 국면은 경기순환적인 현상이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정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 추세로 전환되면서 노동력 부족에 따른 생산둔화 현상이 본격화 된 데 있다.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단기 성장률 수치에 목을 매고 있다. 어떻게든 3%대 성장률 달성을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초이노믹스'로 시작된 현 정부의 내수부양과 경기활성화 조치 결과가 성장률 수치로 평가된다는 강한 압박감이 보인다. 하지만 올해 일어난 메르스 사태, 중국의 경기불안 등 대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았던 상황에서 성장률 목표에만 맞추는 경제정책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성장잠재력 확충에 무게를 둬야 하지 않을까.
어제 열린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처음으로 '3%대' 고집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긴 했다. "올해 3.1% 성장률 전망치에 대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하방리스크 위협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수치에 목메지 말고 정책의 무게를 구조개혁에 더 두길 바란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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