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현재 북한 핵실험에 관한 정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정보와 의견을 취합하고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대응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채택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중국이 얼마나 강한 제재에 동의할지, 또 자체적인 제재는 어떻게 할지 등은 향후 동북아 정세를 좌우할 주요 변수이기 때문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는 중국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도 국내적인 변수로 인해 고심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외사영도소조나 국가안전위원회를 개최해 내부 공식화 작업을 거칠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은 16일 도쿄에서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협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력하고 포괄적인” 결의를 추진하기로 세 나라가 합의했다면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임 차관은 “중국이 핵실험에 대해 올바른 대응을 하고 강력한 조치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국은 여타 관련국들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큰 부장관과 사이키 차관도 ‘중국의 지도력과 영향력’을 촉구했다.
핵실험 후 중국 역할론을 가장 뚜렷이 언급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은 그동안 누차에 걸쳐 북핵 불용 의지를 공언해왔다"며 "그런 강력한 의지가 실제 필요한 조치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5번째, 6번째 추가 핵실험도 막을 수 없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없다는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서 나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군사력을 증강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13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방어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미사일방어 능력을 (한·일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 한반도 배치를 비롯한 미사일방어(MD) 강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협박성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아울러 미국은 중국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남중국해 문제까지 북핵 관련 대 중국 압박의 소재로 삼았다. 블링큰 부장관은 16일 3국 외교차관 협의 후 “우리는 지역의 안전 그리고 모든 나라의 안전을 위해 남중국해에서의 자유 항해권, 즉 세 나라의 생명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난 10일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한 것도 1차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경고였지만, 중국 압박의 의미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14일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이 문제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미·일이 원하는 것만큼 중국이 호응할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북한이 더 강하게 반발하고 한·미·일이 그를 명분으로 대응 수위를 계속 높이면서 결국엔 중국 견제체제를 튼튼히 구축하게 되는 ‘악순환’에 스스로 발을 담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전례없이 강경하게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게 별로 없다는 비판도 내부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며 한 말을 보면, 3차 핵실험 이상의 대응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왕 부장은 "북핵 문제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이 세 가지는 상호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15일자 사설은 중국의 속내를 보다 분명히 엿볼 수 있게 했다. 신문은 “북한이 제멋대로 한다는 이유로 한국 여론이 중국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신문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손에 마치 북핵문제 해결의 '황금열쇠'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라며 북·중은 한·미처럼 동맹국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신문은 "공전의 제재와 극단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북한을 놀라 뒤로 물러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워싱턴의 아시아태평양 대전략의 일환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환구시보>는 13일자 사설에서는 “중국은 북한 정권 죽이기식 안보리 결의에는 반대할 것”이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김흥규 소장은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선택도 달라질 개연성이 많기 때문에 불필요한 빌미를 주는 성급한 정책결정은 자제해야 한다”며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이어 김 소장은 “냉전적인 동맹 방식만으로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며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정책 결정에 한국 정부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핵실험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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