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 윤여준이 4년 만에 현실 정치에 다시 등장했다.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비판이 엇갈린다. 정치 개혁을 위한 책사, 전략가, 경세가라는 찬사와 더불어 권력과 출세를 지향하는 철새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아직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평가는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김종인은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파선 위기에서 처한 제1야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총선 공천과 공약 개발이라는 전권을 확보했다. 지난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를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며 앞장섰다.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총선과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결국 토사구팽으로 끝났다. 말을 바꿔 탔다. 대척점에 서 있었던 문재인 진영의 장수로 나섰다. 친노 진영은 겉으로는 환영하지만 내심으로는 마뜩치 않다.
윤여준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윤 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방송 연설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대선은 패배로 끝났고 건강도 여의치 않다. 그간 애증 관계였던 안철수 의원의 요청에 응답했다. 창당의 설계도 그리기가 만만치 않다.
야당 재건에 나선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70대 후반으로 동시대를 살면서 동일한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 해방과 전쟁을 경험했다. 학창시절에 4·19와 5·16을 겪었고,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력도 거의 동일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정권에 참여했고, 이후 YS 정부에서 역할을 했다. 김 위원장은 네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경제수석,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윤 위원장은 청와대 비서관과 수석, 환경부 장관, 한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사람의 출신 또한 지주에다 명문 집안이다. 김 위원장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다. 부친이 일찍 사망해서 조부의 슬하에서 자랐다. 윤 위원장의 부친 윤석오는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과 총무처 차관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권력과 국가운영을 지켜봤다. 김병로와 윤석오는 지주 출신이었지만 진보적인 토지개혁을 주장한 인사들이었다. 개혁적 보수 철학이 두 사람에게 유전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몇 가지 차이점도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학자 출신이고, 윤 위원장은 언론인 출신이다. 김 위원장은 좁지만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분명한 자기 소신과 고집이 있다. 타협하기 보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기 힘들고, 자기 주도적인 업무 스타일이다. 한편 기자 출신인 윤 위원장은 사회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예민하다. 폭 넓은 상식을 기반으로 대세에 따르는 유연성이 있다. 자기 고집 보다는 보스의 의중을 존중한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중용될 참모 스타일이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인간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고슴도치형, 박학다식하며 현실에 타협해서 적응하는 여우형이 그것이다. 김 위원장은 고슴도치 유형, 윤 위원장은 여우 유형이다. 지난 대선 때 김 위원장은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윤 위원장은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전자는 경제에 관한 전문 서적이고 후자는 정치 일반 서적이다.
역사와 정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올해 총선과 내년 대선은 2012년의 복제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의 정당 지지율도 2012년 11월 3명의 대선 후보 지지율과 거의 동일하다. 지난 대선에서 맞섰던 김종인과 윤여준이 각각 야당의 사령탑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제1야당의 체질을 개선해 수권 정당의 능력을 갖추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윤 위원장은 의미있는 제2야당의 건설을 통해 대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총선은 예선이고, 진정한 승부는 내년 대선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강태공은 나이 80살에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천하 제패의 꿈을 이루었다. 팔십을 바라보는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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