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기자가 인터뷰한 김연식 항해사(33)의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취업 도전기는 가히 ‘기적’에 가깝다.
이미 상선 항해사로 5년여간 전 세계를 누비며 책도 내고 강연도 다니던 그는 지난해 돌연 ‘승선의 의미’를 찾겠노라며 앞길이 창창한 상선 항해사 대신 그린피스의 꿈을 꿨다.
그린피스는 네덜란드에 본부를 두고 있고 별도의 채용공고조차 없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어도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포기한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짧은 영어를 총동원해 네덜란드 본부로 이메일을 보냈다. 수십여 차례의 시도 끝에 잡은 인터뷰를 통과해 현재는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로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를 타고 있다.
최근 지역 청년들을 위한 정책으로 성남시는 ‘청년배당’을,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발표하거나 시행 중이다. 이들 정책은 모두 ‘생활 보조’나 ‘활동 지원’식의 간접적 지원 방식이다. 정부와의 갈등 끝에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점도 닮았다.
법리적 판단이야 대법원에 맡기더라도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소홀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는 130만 명에 달하는 '청년니트족'이 있다. 혹자는 이들에게 사력을 다해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라거나 해외 또는 국내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최저시급을 겨우 넘는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불안한 내일을 준비하면서 고시촌이나 원룸, 옥탑방에 사는 청년들이 모두 노력만 한다면 ‘기적’을 얻을 수 있을까.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김연식 항해사만 해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에스페란자호를 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2010년 당시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은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 해결을 위해 견고했던 진입장벽을 일반인에게 과감히 낮췄다. 덕분에 ‘청년백수’였던 그에게도 길이 열린 것이다.
얼마 전 김연식 항해사는 지구 반대 편 아르헨티나에서 기자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보통의 희망조차 공짜가 아닌 세상에서 나 같은 청년들은 기적이 못 되더라도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내가 희망을 봤듯 우리 사회도 청년문제를 위해 전에 없던 용단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누구면 어떠랴. 우리 청년들은 작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보통의 희망’이 필요하다. 누구든 ‘보통의 희망’을 만든다면 그 다음은 청년들의 몫인 ‘기적’의 차례가 될 것이다.
사회부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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