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무엇이 문제인지 MRI를 찍듯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통계만큼 좋은 수단도 없다. 잘못된 재료로는 결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듯이 주요 정책에 사용되는 기초 통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보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사다. 신뢰도 높은 통계를 바탕으로 주택정책을 기획할 것이라는 장관의 신념이 아직 국토부 미분양 통계에는 미치지 못했다. 2년 전 미분양이 지난달에야 반영되며 서울시 미분양은 갑자기 두 배로 증가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4일 국토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2월 서울 총 미분양주택은 494가구로, 전월보다 105.0% 늘었다. 서울 25개구의 미분양이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성동구 성수동 내 1개 단지에서 신규 미분양 266가구가 갑자기 발생했다.
미분양이 급증한 단지는 D사가 시공한 T아파트다. 총 공급가구수가 422가구임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266가구가 하루아침에 미분양으로 쏟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분양시기는 2014년 3월로, 2년 전 공급한 단지다. 2년 전 분양과 정당 계약까지 마친 단지에서 미분양 주택이 무더기로 나왔다.
확인 결과, 분양 초기부터 미분양이 났던 아파트로 시행사가 미분양을 고의 누락하면서 지금까지 수치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국토부 미분양 통계는 각 지자체가 시행사로부터 정보를 받아 국토부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시행사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락할 경우 잘못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
분양 관계자는 "구청에서 시행사에 월마다 확인을 하는데 시행사 말만 믿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서 "애초부터 있었던 물량인데 누락됐다 이번에 잡혔다. 현재는 256가구가 남았다"고 해명했다.
미분양 통계 오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국토부는 9월 정당 계약일이 도래하지 않는 강원도 아파트를 미분양주택으로 집계했고, 지난 10월에는 경기도 김포시·화성시 등 8개 기초자치단체 미분양 증가분 995가구가 누락된 자료를 발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했다.
미분양 통계는 주택인허가실적과 착공량, 분양승인실적과 함께 주택 수급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다.
주택인허가, 착공, 분양승인은 공급 지표라면, 미분양은 수요 지표로 해석된다. 또한 주택인허가, 착공, 분양승인실적은 실제 과잉공급에 대한 실체를 보여주지 못한다. 1~3년 후 준공 시점에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진다. 반면 미분양은 현재의 소비자 심리를 즉각 반영한다. 최근 과잉공급 우려가 심화되며 시장에서는 미분양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현재로썬 공급과잉과 관련해 시장 동향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은 정보는 미분양이다"면서 "미분양 증감에 소비심리가 민감하게 움직이는 만큼 공공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승수 기자 hans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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