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종화기자] 지난해 9월 리만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고통을 실감한 지 1년을 넘어섰다. 각종 경제지표가 살아나면서 경제는 이미 위기 이전수준을 회복한 듯한 분위기다. 특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나라"로 지목되면서 샴페인을 좀 일찍 터뜨리는 듯하다. 국제유가 불안 등 하방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잖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1년의 교훈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註>
지금으로부터 1년전. 혹시나 하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제 닥쳐오자 이미 한 번의 금융위기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파랗게 질렸다. 그 시절의 고통을 이겨낸지 불과 5년 남짓. 다시 끔찍한 위기가 닥친 것이다.
위력은 대단했다. 사회전체가 패닉상태였다. 실업률은 치솟고, 지난 `97년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를 우려한 기업들은 투자를 끊었고, 경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능가하는 공포의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국민에게 7.4.7(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개 강국)의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며 출범했던 이명박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97년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며 비난받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 정부의 위기대응책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 또 국제공조를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고자 했다.
국내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을 쏟아 부었다. 2009년도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301조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으로 편성됐다. 재정건전성 문제는 뒷전이었다.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 했다.
◇ 한 번의 위기극복 경험이 도움
그 과정에서 한 번 위기를 이겨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외화유동성 해결을 위해 미국과 극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금융기관과 공기업의 적극적인 외화채권 발행으로 외환시장이 안정됐다.
주요국 정상회의(G-20) 등 국제무대에서 위기극복 경험을 통해 위기극복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국가가 많아졌고, G-20 의장국으로 선출되면서 국가적 위상도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희망적 전망을 쏟아냈고 급기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한국이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선언했고,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사는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로 상향했다.
이제 한국경제는 완전히 위기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금융시장의 많은 지표들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실물경제는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고용시장의 차바람은 아직 매섭기 때문이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에 비해 아직 마이너스라는 것은 우리경제가 지난해보다 1원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경기의 바닥은 지났지만 경기회복이 지속가능한 회복을 이루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나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원래 성적으로 돌아오진 않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지난 1년간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마저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 금융시스템 개편, 구조조정 등 난제 산적
이번 위기극복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도한 규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적절한 선에서의 금융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4월 G-20 정상회의에서는 전 세계 34개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금융감시단을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결재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현재의 8%에서 상향조정하는 것도 논의 중이고, 무리한 자산확대를 막기 위한 대손충당금제도도 손보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 과제의 연장 선상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의 위기관리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하고, 외환시장 규모도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먼저 금융감독 기능의 일원화 요구다. 외환 등 국제 금융은 기획재정부가, 국내 금융은 금융위원회가,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금융감독원이, 통화정책과 유동성 관리를 한국은행이 맡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위기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번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음이 단적인 예다. 금융시스템 전반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감독시스템의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환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시급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해외자본이 들고남에 따른 영향이 너무 크다. 외국자본의 유출입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외연의 확대는 필연이다.
◇ "장기적 안목에서 금융시장 운용해야"
금융기관의 체질도 바꿔야 한다.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되는 전철을 더 이상 밟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수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이 맞지만 아직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진단이다.
현오석 KDI원장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퇴출구조를 만들어주고 기업을 보다 생산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구조조정의 기반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스템적인 부분에서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금융시장을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기적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금융팀장은 "기준금리 동결 등 단기적으로는 금리가 내렸지만 장기투자에 대해서는 금리가 제대로 안움직이고 있다"며 "투자활성화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금리가 내릴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김종화 기자 just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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