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 세상을 지배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상상가능한 일처럼 들린다. 1984년 미국의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영화 ‘터미네이터’는 많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젊은 시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근육질 몸매도 놀라웠지만 미래의 기계 인간인 로봇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인간 문명을 위협하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30여년전 이 영화를 함께 보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이런 상황은 아마 수백년 뒤에 현실로 나타날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그 막연한 공상이 바로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전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스마트폰 같은 통신 수단을 과연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달까지 다녀오는 인간의 문명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지능을 대신하는 ‘빅 브라더’의 출현은 나중 또 나중의 일로 치부했던 인간 세상이었다.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과 현존하는 가장 진화된 인공지능 중의 하나인 구글 알파고와의 바둑 대국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대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고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대중들은 출발했다. 인공지능과 게임을 벌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아무리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천재 바둑 기사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경우의 수가 많은 가로와 세로 각각 19줄의 바둑을 컴퓨터가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소 다른 의견으로부터 출발했다. 컴퓨터 수천대가 수만번의 대국을 경험해 보았고 인간의 수천배 아니 수만배에 이르는 연산 속도는 아무리 천재 바둑기사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승부라는 전망이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분석한 내용 중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이미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에게 완승했고, 그 뒤로도 상상조차하기 힘든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감정과 분위기에 좌우되는 인간과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인공지능의 냉정함은 후반 대국으로 갈수록 더 빛을 발한다는 지적까지 잇따랐다.
이세돌의 투혼도 빛나지만 솔직히 더 깜짝 놀란 이유는 따로 있다. 한낱 조금 더 첨단화된 컴퓨터의 일종으로만 알고 있었던 인공지능(AI)의 정체가 밝혀진 까닭이다. 30여년전 보았던 영화 ‘터미네이터’의 공상과학이 손에 잡히는 현실로 섬뜩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었던 이세돌 기사는 내리 세판을 연거푸 알파고에게 내주었다. 첫판을 내주었을때만 하더라도 인간의 방심이겠거니 했지만 세판에 이르러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세계가 가져올 두려움에 치를 떠는 국민들이 있을 정도였다. 알파고의 충격은 단지 두려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전개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시선을 바둑 대국장으로부터 국회로 옮겨보자. 공천 전쟁에 빠져 민생은 나 몰라라 하고 국가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인공지능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는 국가간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는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현실 문제에 대한 극복의지가 하염없이 주춤해져 버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조사(서베이링크가 지난 2월 19~22일 전국 성인 10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표본오차95%신뢰수준±3.0%P 응답률17.9%. 관련 사항은 발표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무엇을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지 물어본 결과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는 의견이 10명 중 9명에 가까운 86.6%였다. 한편으론 로봇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사라지는 직업만큼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도 많을 것이다’는 응답이 3명 중 2명 정도인 66.9%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새롭게 변화는 세상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감정에 놓여 있다. 이런 국민들의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공천에 매몰되어 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며 우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과학문명은 시시각각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속도로 변해 가는데 국민들의 삶과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국회의 모습은 변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국회보다는 알파고가 우리의 미래를 더 밝게 해주는 희망이 아니냐는 조소 섞인 장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성난 민심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외쳐댈지 모를 일이다. 국회보다 알파고.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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