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그동안 은행장을 지낸 인물이 금융지주사 회장으로 유력시되거나 은행 출신이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자동적으로 꿰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CEO가 되려면 은행 출신이라는 명함만으로는 부족할 듯 하다. 금융산업이 비은행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업권 구분 없이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이끌어 내는 인사들이 유망 인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 KB·신한·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사의 계열사 CEO가 교체가 끝난 가운데 과거와 다른 유형의 CEO가 속속 등장했다.
먼저 계열사 포트폴리오가 뛰어난 신한금융지주가 국내 금융지주들이 되풀이해온 은행 출신 중심의 CEO 인사 구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신한생명에는 이병찬 사장이 새로 선임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은행 출신이 신한생명 CEO로 선임된 것은 처음이다. 전임인 이성락 사장을 비롯해 한동우
신한지주(055550) 회장,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 권점주 전 신한생명 부회장 등 신한은행 출신이 신한생명 대표를 맡은 것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한동우 회장 역시 은행으로 입사했으나 은행장을 지낸 인물은 아니다. 차기 회장 후보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이성락 전 사장, 권 전 부회장, 서진원 전 행장 역시 한 회장처럼 신한은행 임원에서 신한생명 사장의 코스를 밟았다.
KB금융(105560)지주의 김옥찬 사장 역시 국민은행 출신이지만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의 다양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과거에는 지주사 사장직이 그룹 2인자이지만 은행장보다는 서열이 높고 회장보다는 낮은 애매한 자리였다. 회장 유고시 업무를 대행하는 것 외에는 업무가 분명치 않고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서 권력 다툼의 여지만 뒀다.
하나금융이나 신한지주 등이 사장직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서울보증보험 사장에서 KB금융으로 돌아온 김 사장은 KB금융의 비은행계열 총괄 책임을 맡아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현대증권 인수 작업에서도 김 사장의 M&A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출신=CEO 자격'이라는 등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이유를 금융산업 여건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 우리 금융산업은 과거 고속성장 국면에서 자금의 초과 수요를 발판 삼아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산성장 경쟁이 불이 붙으면서 자산 규모가 압도적인 은행 경력이 최우선 경쟁력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현대 금융산업에서는 뱅커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비은행 부문의 능력까지 필요한 것이다. 거대조직을 이끄는 회장에게는 더욱 디테일한 전문성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출신은 어디서나 통하는 만능수표가 아닌 셈이다.
어느 출신이라고 강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업권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인물들도 많다.
황영기 현 금융투자협회 회장도 삼성물산 등 주요 삼성그룹 계열사를 거친 삼성맨이지만 지난 2004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겸
우리은행(000030)장, 2008년 제1대 KB금융지주 회장을 맡았다. 해외펀드 비과세, 금투업계 중심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추진 등 자산관리 시장에서의 현안을 쉽고 빠르게 풀었다는 평가르 받고 있다.
이순우 현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옛 상업은행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우리은행장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통 은행맨'인 이 회장이 지난해 말 2금융권 협회장으로 간 것에 의아함을 자아냈으나 폭넓은 이해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저축은행의 현안 과제를 해결하고 이미지 개선에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카드의 원기찬 사장 역시 금융경력이 없는 제조업체 출신으로, 당시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비금융업 부문의 경력이 결론적으로 업권 구분이 희미해진 최근에는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특히 삼성카드가 특히 타 업종과의 콜라보레이션에 적극적"이라며 "금융권 최초라 할 수 있는 신기술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해온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왼쪽부터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사진/각 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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