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스포츠 경기와 흡사하다. 패배한 쪽은 뭇매 속에 허우적대고, 승리한 쪽은 영광의 축제 무드에 한동안 빠진다. 패자인 새누리당은 뭇매를 맞으며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종편은 집권 여당을 질타하기 위해 정치평론가들을 불러다 희화하기에 바쁘다. 이들은 새누리가 공천 과정에서 보여 준 오만함이 주요 패인이었다고 이구동성 떠들어댄다. 그러나 진짜 패인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와 민생 실패이지 공천 파동이 아니다.
정치학자 젤리노와 벨랑제의 연구에 의하면 실업률 1%포인트 증가는 집권당 후보에 대한 투표의 1.3%포인트 감소를 가져오며, 물가상승률 1%포인트 증가는 집권당 득표의 0.4%포인트 감소를 가져온다. 이를 통해 추정할 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는 공천 과정의 해프닝보다 박근혜 정부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진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취임 후 3년 4개월 동안 한국호를 이끌었던 박근혜 정부는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물가상승, 청년실업 등 굵직한 실정으로 좌초 직전까지 왔다. 그런데도 민생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지리멸렬한 계파싸움에 시간만 날리자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결국 폭발했다.
이 성난 민심을 달래려면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빨리 국민 앞에 나와 그간의 실정을 인정하는 작은 고백을 하고, 남은 임기 동안의 플랜을 공개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두 줄짜리 논평과,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수사만으로는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의미 없고 구태의연한 석고대죄 퍼포먼스를 벌일 필요는 없다. 민주국가 보통의 리더들처럼 정부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순항시킬 동력을 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프랑스도 지난 해 12월13일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를 했다. 대형 테러들로 얼룩진 공포의 한 해를 고단하게 살았던 프랑스인들은 2015년 말 지방선거에서 올랑드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차별과 증오의 상징인 극우파 ‘국민전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사회당 정부의 경제 실패와 민생 실패를 준엄하게 심판했고 올랑드 정부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선거 직후 곧바로 총리를 내세워 입장을 표명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그 동안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를 해왔다고 고백하고, 선거 패배의 주범인 실업률 감소를 위해 2016년 1월까지 새로운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덜 나쁜 것을 선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욕구를 유권자들에게 불어 넣는 정치를 하겠다고 천명하고 사회당 정부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올랑드 대통령도 12월31일 국민들과 재외 동포들에게 보내는 신년연설에서 대통령의 첫 번째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프랑스 제1의 과제인 실업률과의 전쟁을 최우선 삼아 사회당 정부가 실패했던 고용 창출에 매진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똑같은 정치적 사건을 대하는 한국과 프랑스 정부의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쪽은 선거 참패를 자기의 과실로 인정하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하고, 다른 한쪽은 즉각 패인을 찾아 처방책을 마련했다.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양국의 정치문화가 상이한데 이런 비교는 어불성설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나 민주국가의 지도자라면 그 누구든 정국이 뒤숭숭하고 혼란에 빠졌을 때 국민과 소통하는 스킬 정도는 필수로 겸비해야지 않겠는가. 이런 상식의 리더가 2017년 대선에서 꼭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이번 4월은 결코 잔인하지 만은 않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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