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들 말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선진 자본시장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서 가격적으로 매력적인 기업들이 많다고 봤으니까요. 그런 시각으로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저도 의미없는 ‘방어’를 포기하렵니다. 며칠 전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이제는 국장 탈출이란 말에 토를 달아야 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상법 개정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개인적으론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일부 투자자들의 의견 제기, 불만 표출 대상에 그쳤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 논의의 광장에 선 것입니다. 이제부턴 왜 상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도대체 한국 증시가 어떤 꼴이었는지 공감대를 넓힌 후, 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법 개정은 주식회사의 주인인 모든 주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익을 찾아주는 일이지만, 지금껏 자기 마음대로 회사를 주물렀던 기업의 최대주주(집단)이자 경영자를 압박하는 일이다 보니 갈등은 충분히 예상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재벌들이 소송 남발 우려를 전면에 내세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예상한 바 이제부터 의견을 조율하면 됩니다. 주고받을 것도 있겠죠.
그런데 조율의 키를 쥐어야 할 정부가 어느 한 편을 들고 나서면 배는 출항하지도 못하고 제자리 신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장은 지난 일요일 TV에 출연해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부정적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법리적 문제 외에도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이사가 회사에 충실의무를 다하게 돼 있는데, 주주까지 포함하면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하면 이를 빌미로 외국 투기자본이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제 대답은 “네!”입니다. 경영진이 자기 마음대로 의사결정 못하고, 지분 많은 주주가 요구하면 그에 응해야 하는 게 주식회사입니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주주니까요. 그걸 거절하고 싶으면 그럴 수 있을 만큼 지분을 확보하거나 아예 상장하지 말라는 게 주주들의 요구입니다. 요구하는 주체가 외국 투기자본이든 개미든 가릴 것 없이, 주주의 이익 훼손을 막자는 겁니다. 지금껏 일부 지분만 갖고 회사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구태를 고치자는 것이 상법 개정의 취지입니다. ‘주권’의 기초부터 삐딱하게 쌓았는데 그 위에 온갖 ‘밸류업’을 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여태 참고만 있던 투자자들이 눈이 깨어 한국 기업 주주 안 하고 미국 기업 주주하겠다고 돈 싸 들고 나갑니다. 붙잡고 싶다면 온전히 주주 대접을 해주세요. 개인의 자산관리에 애국심을 기대하지 마세요.
재벌을 비롯한 기업, 정부 관료가 생각을 고쳐먹지 않는 이상, 국장 탈출이 맞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벌어진 재판에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이나, 두산밥캣-두산에너빌리티 합병을 사실상 승인한 금감원도 빼놓을 순 없겠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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