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진료실에 생후 6개월 된 아이가 반복되는 경련으로 내원하였다. 아이는 중증 간질로 하루에 수 십 번 연축성 경련을 반복하며 발달도 지연되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아이는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항경련제 처방을 반복하였지만 경련은 점점 심해갔다.
할 수 없이 한방치료라도 해보겠다며 모처에 유명하다는 한의원에서 3-4개월 소아간질 한방치료를 진행했다고 한다. 한방치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경련은 감소경향을 보이지 않아서 다시 수소문하여 찾아왔다고 한다.
아이를 진찰하다 보니 손가락 끝마다 시커멓게 멍도 나고 딱지도 겹겹이 앉은 흉터투성이였다. 놀라서 이유를 물으니 한의원에서 권한 응급치료법이라고 한다. 경련을 할 때마다 손을 따주면 경련이 멈출 것이라며 응급처방으로 손끝을 사혈(바늘로 손을 찔러 피를 내는 치료술)할 것을 권유했다고 했다. 한의사의 말을 충실히 지키고자 하루에 수 십 번 연축을 반복하는 아기의 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늘로 찔러 피 내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달 지속하였으니 아이의 손가락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한방에는 열 개의 손가락 끝에 중요한 혈자리가 있어 이를 '십선혈'이라 부른다. 이곳에 피를 내는 사혈법은 한방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적인 응급처방법이다. 특히 급성 소화장애인 식체, 복통, 설사 등에 매우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지는 어지러움이나 갑작스러운 실신, 혼수 등에 십선혈의 자락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뇌출혈로 의식불명인 응급상황이나 뇌 내의 뇌파이상으로 발생중인 경련의 응급상황에서 손가락에 피를 내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손가락에 피를 내는 것으로 뇌 내의 출혈이 멈출 리가 없으며 뇌 내의 전기적인 스파크가 진정될 리 만무하다. 경련이 진행되는 그 순간에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그 어떤 물리적 자극으로도 경련 그 자체를 멈출 방법은 없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은 현재는 뇌 내에 직접적인 안정제를 주입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경련 중에 응급조치의 제일원칙은 편안한 자세를 유지시켜주고 기도를 확보하는 것이 전부다. 그 외에는 경련을 약화시키거나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
간질치료에 침 치료의 유효성은 제한적이지만 인정이 된다. 그러나 경련 발생의 순간 경련 자체를 진정시키는 효과는 전혀 인정될 수 없다. 그러니 경련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손가락 사혈로 아이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 이유는 없다.
아마도 뇌전증 환자에게 경련 시 사혈을 권한 사람이 한의사는 아닐 것이다. 기본적인 의학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그렇게 황당한 조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어로 '돌팔이'라 부르는 무면허의료업자들일 가능성이 크며 환자들이 구별을 못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들의 경련에 손가락을 따는 민간요법은 불필요하다. 응급상황에서는 응급상황에 맞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방병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경원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전) 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 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현) 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전) 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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