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사춘기였던 모양이다. 영화 한 편 보고도 가슴이 뛰고,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전혀 그런 일이 없다). 그 영화도 그랬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 로맨스? 뭐 그랬던 것 같다.
사랑하는 남녀 주인공이 있다. 이들의 사랑을 질투한 마법사가 마법을 걸어 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 방법이 잔인하면서도 사뭇 낭만적이다. 여자는 낮에 매로 변하고 남자는 밤에 늑대로 변한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그 찰나의 순간,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눈물짓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낮이면서도 밤이고, 밤이면서도 낮인 날'이 와야 둘은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날이 어떤 날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애태우던 남녀의 눈앞에 어느 날 기적이 펼쳐진다. 환한 낮이 어두워지더니 밤으로 바뀐 것이다. 낮이면서도 밤이고, 밤이면서도 낮인 날은 그렇게 찾아 왔다. 둘은 온전히 사람의 모습으로 재회한다. 그리고 피의 복수(뭐 대충 이런 영화였다. 제목은 <레이디 호크>였다). 그날의 현상은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이었다.
사춘기 시절 애태우며 봤던 영화의 기억 때문일까? 달은 어쩐지 불가능한 사랑까지 이어줄 수 있는 신비의 대상이다. 철없던 사춘기 소년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인류에게 달은 늘 그리움과 경외의 대상이었고, 상상력의 대상이었다. 달 없는 밤하늘은 삭막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자 없는 남자들>의 표지에 쓰인 달 이미지는 그래서 중의적이며 의미심장하다. 달 없는 밤하늘과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닮았다.
지구인들이 달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것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당장에라도 손에 잡힐 듯 다가왔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그것을 우리는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달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늘 한 면만 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은 지구와 '동주기 자전(tidal locking)'을 한다. 달의 자전주기와 지구의 공전주기가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달의 한 면만 볼 수 있다. 달은 1959년이 되어서야 뒷면을 인류에게 공개했다.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3호'가 보내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인류는 마침내 달의 뒷면을 처음 보게 된다. 그 모습은 늘 보던 앞면과는 사뭇 달랐다. 옥토끼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무참히 부서졌다. 달의 뒷면은 삭막했다. 매끈한 앞면과 달리 크레이터(충돌로 생긴 구멍)로 뒤덮인 고원지대뿐이었다.
달 없는 지구는 단순히 '삭막하다'라는 문학적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기다린다. 일례로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채로 자전한다. 지구가 기울어져 자전하는 이유는 달의 중력 때문이다. 이처럼 기울어진 채로 돌기 때문에 사계절이 생긴다. 만약 달이 사라지면 지구의 자전축은 0~85도 사이에서 요동친다. 지구가 바로 서서 자전하면 적도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훨씬 더 차가워질 것이다. 밀물과 썰물도 당연히 사라진다. 생식주기가 바뀌고 짝짓기 시기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생태계 교란이 발생한다. 심지어 인간의 유전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8일 달 일부가 지구에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진행된다. 부분월식은 태양, 지구, 달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늘어서지 않고 약간 어긋나 있어서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에 일부가 가려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월식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호주, 오세아니아 등에서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는 21일 더 큰 우주 쇼를 앞두고 북미 대륙이 들썩이고 있다. 99년 만에 개기일식이 발생하는데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大미국 일식(Great American Eclipse)’이라고 부르며 미국은 흥분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규모의 일식을 보려면 2035년 9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남한에서는 부분일식만 볼 수 있고, 온전한 개기일식은 북한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달은 1년에 4cm 정도 지구로부터 멀어진다.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 38만km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언젠가 일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영화 <레이디 호크>에서처럼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기적 같은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2035년 북한에 가서(과학자나 학생들만이라도)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모습을 그려본다면 지나친 영화적 상상일까?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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