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이제는 어디에나 우리에 대한 정보가 흘러 다닌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사회에도 기술은 쉬지 않고 우리의 정보를 여기에서 저기로,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한다. 바로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신간 ‘소리 없는 연결’은 아담 스미스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을 오늘날 테크놀로지 시대에 맞춘 새로운 개념으로 재정의한다. 개인의 의도치 않은 이익 추구가 시장 질서를 효율적으로 작동시켰듯, 기술의 자유로운 흐름이 그와 비슷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연구하는 경영학박사 신지나, 카카오에 근무하며 융합산업 전반을 연구하는 민준홍, KT경제경영연구소의 박운정·배현표 등 4명의 저자들은 그 기술의 중심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있다고 강조한다.
ICT의 사전적 정의는 정보기술(IT)과 통신기술(CT)의 결합이지만 저자들이 내리는 정의는 더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인공지능과 모바일, 웨어러블 등과 같이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 쉴새 없이 데이터를 주고 받는 기술들’이다. 그간 단편적인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활용되던 기술들과 달리 확장되고 연결되며 융합하는 성질을 띈다. 때문에 과거 물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던 인간의 모든 경제, 사회적 활동들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뒤바뀐다. 저자들은 집과 학교, 회사 등 일상 생활과 밀접한 공간을 중심으로 ICT가 그려내고 있는 이 같은 변화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세계적인 미디어 기술연구소 MIT미디어랩의 ‘시티홈’은 현 ICT 기반의 주거 기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연구소는 좁은 실험용 주택에 사람의 행동에 따라 변형되는 이동형 가구와 벽면을 설치했다. 실제로 주인이 특정 음성이나 손동작을 취하면 방의 구조는 침실·응접실·주방·파티 룸 등 목적에 맞게 변형된다. 실제 18.5제곱미터인 실험용 주택은 공간 구성의 변화에 따라 최대 90제곱미터 크기의 일반 주택처럼 활용할 수 있다.
시티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집의 형태는 ‘커넥티드 홈’이다. 통신·엔터테인먼트·헬스케어·보안 등 다양한 영역의 디바이스가 상호 연결되며 집이 그 자체로 ‘모든 활동이 가능해지는 공간’이 된다. 현재 음성인식으로 조명 등 집안의 사물들을 제어하는 애플의 ‘홈킷’이나 페이스북의 ‘자비스’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단계다. 저자들은 향후 집 안에서 회사에 출근한 것처럼 업무를 보고(텔레워크 솔루션), 대출 상담을 받고(인터넷 전문 은행), 직접 요리하거나 가전기기를 제어하는 로봇(인공지능 집사)의 도움을 받는 인류의 미래를 예상한다.
이들은 “맥킨지는 향후 집이 사람의 신경계처럼 뇌에 해당하는 부분과 신경 말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세분화 된 로봇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며 “LTE 네트워크에 비해 100배 빠른 5G 네트워크가 2019년 상용화될 오는 2019년쯤 이러한 집 구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른 공간들 역시 커넥티드 홈처럼 ICT 기반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곳’이 된다. 커넥티드 스쿨에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문에 대답하는 인공지능 챗봇이 보편화돼 학습 효율을 높여주고 가상·증강현실(VR·AR)이 교과서를 읽는 것이 아닌 ‘보고 느끼는 교육’으로의 진화를 이끈다. 지난해 미국 조지아 공과대의 수업에 투입된 IBM의 인공지능 조교 ‘질 왓슨’과 AR을 활용해 인체 해부학 프로그램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 사례들이 변화의 근거로 제시된다.
업무 공간 역시 ICT의 ‘연결성’을 기반으로 기존의 일터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완전히 뒤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별도의 계산원이나 계산대를 두지 않고 센서로 고객들의 결제 내역을 파악하는 ‘아마존 고’는 저자들이 보는 제조, 유통업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인포테인먼트(정보와 오락의 결합을 뜻하는 합성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자동차를 ‘생활공간’으로 재편 중인 테슬라 역시 이들이 전망하는 자율주행의 현재이자 미래다.
한국의 향후 4차 산업 대응이 ‘일단 유행을 따르고 보는 접근’에 머물러 있다는 저자들의 비판은 곱씹을 만 하다. 그런 접근을 취하다 보면 하나의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만 목을 메고 허상에 가까운 구호만 외치다 전 세계적 경쟁에서 뒤쳐지기 십상이다. 그에 앞서 부족한 전문 인력의 규모, 관련 투자의 진척 상황, 기술력의 수준 등 현 산업 생태계의 환경과 맥락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책 전체에 걸쳐 ICT가 촉발하고 있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살피는 것은 이러한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들은 “4차 산업혁명은 결국 ICT 융합으로 대변된다”며 “보이지 않게 수많은 데이터를 연결하는 첨단 ICT에 주목하며 우리의 실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소리 없는 연결. 사진제공=한스미디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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