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주거사다리' 타고 고시원 탈출하기
2017-11-30 06:00:00 2017-11-30 06:00:00
박민규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월 9만원에 식사까지 제공되는 '갑을 고시원'에 거주한다. 대학교 2학년인 '나'의 공간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릴 만하다. 얕은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사람들이 그득차 있는 공간에서 '나'는 말이 없어지고, 움직임이 없어진다. 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없으니 몸은 뭉치고 점점 나무처럼 딱딱해지고, 소리를 안내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이 소설의 시점은 1991년이다. 25년이 훌쩍 지난 현재의 청년삶은 나아졌을까. 통계청의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청년 주거형편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거안정에 대한 사회적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들의 주거여건은 1인가구가 많고, 임차가구 중 월세 비중이 64.3%를 차지하며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도 7.2%로 전체평균인 5.4%보다 높다. 특히 저소득 청년은 월세비중이 66.9%로 높고, 쪽방과 고시원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관' 같은 고시원에서 학업과 생업에 전념해야 하는 청년들은 부모 도움 없이는 내집과 전셋집 마련이 어렵고,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주 결혼연령층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인구가 혼인을 포기하면서 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출생아수는 15년 만에 40만명대를 밑돌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해마다 70만명대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60만명대로 낮아지더니 2002년부터는 40만명 대로 고착화됐다.
 
이같은 여건 속에서 주거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 방향은 확실하다. 그간 주로 내놨던 공급자위주의 주거복지 정책에서 벗어나 청년, 신혼부부, 노인, 빈곤층 등 생애 단계와 소득수준을 고려한 수요자 맞춤형 지원책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 때문이다. 청년 주거지원 대책을 보면 5년 동안 총 25만실의 주택을 공급하고, 기숙사에 5만명이 입주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문턱도 낮춰 대학원생, 장기 취업준비생, 소득활동 증명이 어려운 알바생,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여기에 주거문제로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는 점을 감안해 신혼부부도 기존 유자녀 중심에서 예비 신혼부부까지 지원대상을 넓혔다.
 
정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이 취업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튼튼한 주거사다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내놓은 정책들이 두 발을 뻗고 자고 싶어하는 수많은 '나'에게 집다운 집을 마련해주고, 그 집을 발판삼아 꿈과 가족을 이루는 촘촘한 주거복지망 구축의 선순환이 시작되길 바란다. 2년6개월을 '갑을고시원'에 머물렀던 주인공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간신히 작은 임대아파트 하나를 마련하면서 고백한다. '비록 작고 초라한 곳이지만 입주를 하던 날 나는 울었다'고. 현재의 수많은 청년들이 앞으로 주거복지정책의 수혜를 받아 빈약한 주거지를 탈출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길.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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