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왕해나 기자] "집은 그저 잠자는 곳이었데, 퇴근이 빨리지면서 가족과 저녁도 먹고 아이와 놀 수 있는 시간도 생겼어요."
대기업 10년차 직장인 박모씨는 주 52시간 예행연습 기간 야근이 줄면서 집과 회사만 반복하던 쳇바퀴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올해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박씨는 "맞벌이를 하는 터라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적어 늘 미안했다"며 "야근 감소로 월급이 조금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보다 가족의 가치가 더 크다"고 했다.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부터 법정근로 주 52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대기업 직장인들은 기대감에 한껏 부푼 표정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과 정시퇴근에 따른 눈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환호했다. 야근이 줄면서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졌고, 유연근무제 확산으로 유럽식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놀라워하는 표정도 보였다.
이미 주 52시간 시범운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워라밸 문화도 정착을 시도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주 52시간 예행연습을 시작한 데 이어 오늘 7월부터는 선택적근로시간제를 시행한다. 하루 4시간 이상만 근무하면 한 달 평균 주 40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과 연구 직종에 대해서는 직원이 스스로 근무시간 등을 조정하는 재량근로제도 도입한다. 삼성전자 한 직원은 “지금도 주 단위로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해 직원들 사이에서는 만족도가 높은데, 앞으로는 월 단위로 확대돼 보다 계획적인 조정이 가능할 것 같다"며 "집에서 무척 반긴다"고 말했다.
LG그룹 본사인 여의도 LG트윈타워는 이달 2일부터 퇴근 통근버스 시간을 20분 앞당겼다. 계열사별로 출근시간을 30분~1시간 당기면서 퇴근시간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 2월부터 사업장, 부서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에 퇴근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주 40시간 근무를 시범 운영 중이다. 하루 근무시간을 최소 4시간에서 최대 12시간까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근로시간제도 도입했다. 계절 등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 생산직의 경우 3개월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도록 했다. LG전자 한 직원은 "처음에는 오후 5시30분에 퇴근하니 어색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다"며 "저녁이 무척 여유로워졌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대체 휴일제를 도입했다. 불가피하게 주말에 근무할 경우 주중에 휴일을 부여하는 제도다. 또 플렉서블 타임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오전 6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직원은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퇴근이 빨라진 만큼 취미활동 등 개인생활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퇴근시간이 앞당겨지고 유연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게 됐다. 대기업 17년차인 김모씨는 "퇴근 후 아들과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축구도 하고, 게임도 같이 한다"며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아들과 다시 친해질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걱정이 줄어드니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워킹맘 전모씨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지면서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남편과 조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지은·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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