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한국 정부는 모처럼 유엔이 정한 이 특별한 날 공식 행사를 진행하고 환경보호 실천에 나설 것을 국민들에게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직접 ‘플라스틱 없는 하루를 살아봐요’ 캠페인에 동참했다. 정부가 이런 이벤트를 벌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어서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플라스틱 없는 하루. 상당히 비현실적인 슬로건이다. 물론 메타포(은유)로 받아들이면 되지 비판까지 하느냐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의 날 캠페인을 벌이려면 구체적인 슬로건이나 다양한 홍보를 통해 좀 더 많은 국민의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이 플라스틱 없이 생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필기구와 컴퓨터, 자동차, 접시, 밥공기, 냉장고 등등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은 플라스틱 제품이다. 따라서 플라스틱 없는 하루는 일상의 마비를 초래한다.
앞으로는 이런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한 문구보다 좀 더 구체적인 슬로건을 제시해 국민들이 실천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환기시키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면 ‘오늘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맙시다’와 같이 심플하면서도 메시지가 정확히 와 닿고, 지속적인 실천까지 내포하는 것이면 어떨까. 그리고 실천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법적장치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환경보호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막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관심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그 중 프랑스의 경우 이미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플라스틱 면봉은 올해 1월1일부터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면봉이 대서양을 떠다니는 주요 쓰레기 중 하나로 조사되자 지난해 7월20일 ‘생물 다양성 법’으로 이와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다.
면봉은 1923년 레오 저스텐장(Leo Gerstenzang)이 발명한 것이다. 폴란드인으로 미국에 귀화한 저스텐장은 부인이 이쑤시개에 솜을 감아 아이의 귀를 청소해주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발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플라스틱 면봉은 대양을 멍들게 하는 골치 아픈 쓰레기로 변했다. 매년 해변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면봉은 수십 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변기에 버리는 면봉은 바다나 강으로 나가 떠다닌다.
“2015년 유럽에 있는 강과 연안에서 발견된 면봉 쓰레기의 양은 에펠타워 3층 반 높이에 해당한다”고 유럽 서프라이더 파운데이션(Surfrider Foundation Europe)의 대변인 앙티디아 시토르스(Antidia Citores)가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면봉 쓰레기는 오랜 동안 수많은 환경적 피해를 유발하고 있어 결코 우리가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면봉 쓰레기는 화학물질을 배출할 뿐만 아니라 새와 물고기가 먹어 기관을 관통할 위험이 크다”고 시트로스는 말한다.
각질 제거나 질감을 더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미용제품 속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microbilles)도 면봉과 함께 올해 1월1일부터 프랑스에서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 이 플라스틱 알갱이는 치약, 샤워용 젤, 각질제거 크림에 들어있는데 환경오염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5밀리미터보다 작은 이 알갱이는 폐수처리 시 누출되어 물고기가 삼킬 가능성이 크다. “이는 특히 연어나 고래와 같은 어종에 큰 타격을 준다”고 시토르스는 말한다. 이 알갱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 중 10%에 들어있다.
1회용 플라스틱 물병도 큰 문제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매년 1회용 플라스틱 물병을 460억 개 사용한다고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1회용 플라스틱 물병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물병을 소지하고 다니는 비율이 엄청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친환경적인 결정은 큰 주의가 필요하다고 홍보한다. 비록 재사용 가능한 물병으로 지구를 보존한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사용자가 정규적으로 이 병을 씻지 않고 사용한다면 축적된 불쾌한 박테리아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생태학과 수리학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앤드류 신저(Andrew Singer)는 “만약 여러분이 사용하는 물병을 정규적으로 청소하지 않는다면 물병에는 바이러스를 포함해서 환경과 구강 박테리아가 결합한다. 이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 손을 씻지 않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이 될 수 있다”며 물병을 세제나 소다가 들어있는 중탄산염으로 세척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세계 환경의 날 한국 정부가 시작한 캠페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단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남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환경을 어떻게 오염시키고 있는지 좀 더 다양하게 알게 하고 작은 실천을 지속적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사용하는 플라스틱 이쑤시개와 샤워 후 사용하는 플라스틱 면봉이 물고기와 새들을 살해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누가 감히 이것들을 사용하겠는가. 환경문제는 거창한 명제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해야만 개선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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