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0일 현직 부장판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사법농단 사건 수사와 관련해 이날 서울고법에 있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사무실과 주거지, 서울중앙지법에 있는 최모 전 헌법재판소 파견 부장판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이규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으로 근무할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지시를 받아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소모임인 '인사모' 등 단체의 동향을 파악하고, 견제 또는 압박을 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하고, 이를 거부한 판사를 상대로 부당하게 인사 조처한 의혹도 제기됐다.
또 이러한 의혹을 담은 파일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김모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를 피의자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제1기획심의관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2월 본인이 업무상 사용하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서 2만4500여개의 파일을 삭제하는 등 공용물손상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부장판사 등을 제외한 관여 판사 여러 명의 사무실과 주거지, 법원행정처와 양형위 보관 자료, 헌재 파견 근무 시 최 부장판사가 사용한 하드디스크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도 청구했지만, 법원은 "관련자들의 진술과 문건이 확보됐다", "임의수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압수수색 시) 법익침해가 큰 사무실, 주거지 압수수색을 허용할 만큼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다만, 법원은 대법원에서 2차례에 걸쳐 열람등사를 거부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 뇌물 사건 재판기록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대법원으로부터 재판기록을 확보할 예정이다.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부산 건설업자 정모씨의 사건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도 수사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5일 정씨와 부산고법 판사 출신 문모 변호사의 사무실,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2016년 6월 작성한 해당 문건에는 '문 판사가 정씨가 기소된 항소심 재판부의 심증을 유출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2심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며 '변론을 직권 재개해 1회~2회 공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방안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해당 항소심은 변론이 모두 종결되고 선고만 남은 상태였던 2016년 11월 재판부 직권으로 변론이 재개됐고, 공판을 2회 더 진행한 후 2017년 2월 선고됐다. 정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8개월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5년 정씨에게 향응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문 변호사에게 구두 경고를 내렸던 법원행정처는 정씨의 재판 내용을 유출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징계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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