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계속 과로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해 있는 2차 노동시장 근로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함께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 대·중소기업 거래관계 개선을 통한 중소기업 지불능력 확대 등이 병행돼야만 과로사회 탈출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중소기업중앙회와 관련 부처 등에 따르면 중소기업 상당수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신규 채용이나 자동화 여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중에서도 중소 제조업은 청년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분야여서 신규 직원을 뽑기 어려운데다, 최소 비용으로 겨우 사업을 유지해나가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이 자동화를 비롯한 추가 부담을 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해외에 비해 한국은 과로에 따른 사망, 사고 등을 관리할 건강관리 시스템이 열악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시간 근로자 보건관리지침'을 비롯해 불가피한 과로로부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활용이 사업주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 예방조치를 시행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모니터링할 근거가 없어 유명무실하다. 최소한 과로사가 발생한 사업장에서라도 처벌과 감독을 강화해야 하지만 현재는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또 장시간 근로 등 과로가 더욱 빈번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보건관리자(의사) 선임이 의무사항이 아닌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장시간 근로에 따른 질병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유명무실해진 건강관리 시스템 보완과 더불어 엄격한 탄력근로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 3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낸 '유연근로제도 실태조사 결과 및 정책적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탄력근로제 도입 사업장의 57.7%가 '근로자 대표(또는 과반수 노조)와 별도로 협의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탄력근로제 도입업체의 절반정도가 근로기준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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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탄력근로제 없이 52시간 근로제 도입시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탄력근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취업규칙 변경만으로 탄력근로제를 적용하거나 노조와 근로자 대표의 충분한 동의를 통해 도입하고 정부는 탄력근로제 신청기업의 사유가 명백한지 판단하고 사후에도 철저하게 근로감독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가에 따른 소득 상실을 보전하기 위한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도 거론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 업무 외 부상·질병으로 근무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수당을 지급하는 상병수당에 대해 "모든 질병에 대해 원인을 묻지 말고 (급여를)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스위스, 미국, 이스라엘, 한국에만 공적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
나아가 대·중기 거래조건 개선을 통한 중소기업 지불능력 확대도 과로사회 탈피를 위한 장기적인 과제로 꼽힌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비용절감을 위해 위탁·협력업체에 힘든 일을 주면 그 일을 중소기업이 떠맡는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직격탄이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탈취와 수·위탁거래 불공정 행위 근절이 병행돼야만 중소기업도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등 근로조건을 개선할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강명연·차오름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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