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혹시 TV는 언제부터 나오나요? 빨리 보고 싶은데…”
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안,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이규석(56) 씨는 연신 실내등 리모컨을 만지작했다. 이 집은 다른 집과 바닥 생활하는 일이 많은 이 씨에 알맞게 바닥 턱이 없고 리모컨꽂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가장 중요한 가전제품이라는 TV는 받침대가 필요없는 이 씨 옆 바닥에서 얌전히 설치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은 장애인복지관 같은 시설이 아니다. 주택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집은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주택이다. 장안동에 입주한 10명을 비롯해 오류동과 신정·신월동에 모두 24호 32명이 이날 입주했다. 단순히 임대주택을 제공하는게 아니라 주거코치가 배치돼 일상생활 지원부터 일자리까지 지역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게 돕는다.
이미 시설에서 33년을 지낸 이 씨는 6개월 전부터 지원주택 소식을 듣고 들어가고 싶다며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전에는 몇 년에 한 번 보던 어머니도 자주 볼 수 있고, 언제든 자유롭게 교회를 갈 수도 있다. 지원주택 위치도 이 씨가 몇 번을 가보고서야 교회가 지근거리에 있는 장안동으로 결정했다. 실내 적응을 마치는대로 동네 외출도 해볼 요량이다.
강서구 가양동에서 버스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한다는 어머니도 이날만은 싱글벌글이었다. 나이가 꽉 찬 자식을 장가보낸다는 기분으로 가전제품과 이불을 준비했다. 떡집도 알아봐 3일엔 이웃들에게 인사도 하면서 아들의 자립을 격려할 셈이다.
이규석 씨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지원주택에서 실내등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김현수(43) 씨도 같은 장안동 이웃주민이 됐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김 씨 생활습관에 맞춰 휠체어에 벽이 상하지 않게 킥플레이트와 안전손잡이를 갖추고, 화장실은 아예 변기방향까지 바꿔 슬라이딩도어를 갖췄다.
김 씨는 1991년부터 시설 생활을 해왔지만 정해진 시간에 자야하고,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는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몇 번의 자립 시도는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고, 지원주택의 프로그램과 집 내부를 본 후에야 가족의 응원 속에 ‘첫 자립’을 결정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3명이 늘 같이 어울렸던 시설에서 벗어나 크진 않지만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마음껏 놀기도 하고 관심있었던 IT 공부도 해보고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편의시설”이라고 말했다.
조경익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은 “단절된 시설에 있다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어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소통하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저희가 많이 돕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씨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지원주택에서 입주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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