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평등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구석구석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 스포츠의 세계도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지만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남자에게도 그리 녹록치 않다. 하물며 그런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여자라면 더 많은 선입견과 싸워야만 한다. 그렇기에 배우 이주영은 영화 ‘야구소녀’의 주수인을 응원하고 싶었단다.
전세계 유일한 여자 프로 야구선수는 단 1명뿐이다. 일본인 요시다 에리는 일본 최초로 남자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를 한 최초의 여자 프로 야구 선수다. 이처럼 프로 야구 무대는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문이다. 영화 ‘야구소녀’는 여자임에도 프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는 고교 야구 소녀 주수인(이주영 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주영은 그러한 주수인을 연기했다.
이주영은 주수인 역할을 맡으면서 가장 큰 걱정이 야구를 잘 소화하는 것이었다. 한달 반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나름 프로 선수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됐단다. 그는 “야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이 일생 했던 것만큼 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야 했기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봤을 때 ‘저게 무슨 프로를 가려고 하는 선수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최윤태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대역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주영은 “감독님이 대역을 쓸 생각까지도 했다더라. 다행히 열심히 훈련한 성과가 있었는지 감독님이 대역을 안 써도 되겠다고 했다”며 “현장에 가니까 대역이 없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소화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고 밝혔다.
투수 역할을 하면서 “어깨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고 말한 이주영은 “야구가 전신의 코어가 단단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평했다. 그는 “공을 던지는 자세를 만드는 건 무리가 없다.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전신의 근력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구속을 높이는데 무리가 있더라”고 했다. 이에 이주영은 카메라 앵글 안에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을 중점으로 했지만 다음 단계로 기초 체력을 올리는 훈련을 하면서 영화를 준비했다고 훈련 과정을 밝혔다.
야구소녀 이주영. 사진/목요일 아침
요시다 에리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이주영은 최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또한 국내에서도 영화 속 주수인처럼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여자 야구 선수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실제로 그런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했다. 영화 곳곳에 그런 분들을 만나 얻게 된 아이디어를 쓴 것들이 있다”며 “영화에서 다루지 않지만 수인의 아빠가 야구를 시키기 위해서 에이전시처럼 애를 쓴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실제 감독님이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수인은 모두가 만류를 하는 가운데 손에 피가 날 정도로 공을 던지며 구속을 높이려고 하는 등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이러한 모습이 자칫 안하무인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이주영은 수인이라는 인물이 관객들에게 막무가내 철부지로 보여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만류를 하는데 이 역시도 수인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된 걱정이다. 그렇기에 미묘한 인물간의 관계를 조절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영화 안에서는 악인이 없었으면 했다. 선한 이야기를 모두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고 수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갔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이주영은 촬영을 하는 내내 주변 사람들이 안 된다는 이야기만 듣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위축이 됐단다. 그는 “연기지만 모두가 실력이 부족해서 안 된다고만 하다 보니 진짜 ‘안 되나’ ‘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나’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주영은 자신이 수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뚝심 있게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단다. 그는 “수인이 10대 후반이고 많은 세월 야구를 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전부를 야구에 바친 아이다. 나 역시 연기에 바친 8년이 소중하다. 누군가 힘드니 그만하라고 해도 8년을 저버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못할 짓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수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밝혔다.
“수인에겐 야구가 전부이고 단지 하고 싶은 건데 다들 돌아가라고만 하는 거죠. 그런 이유로 포기하게 된다면 슬프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만큼은, 제작진, 감독님만큼은 수인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야구소녀 이주영. 사진/목요일 아침
그렇기에 이주영은 극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모든 일을 겪고 난 수인에게 최진태 코치(이준혁 분)는 수인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아이의 프로필을 보여준다. 이주영은 해당 장면을 언급하며 “최 코치가 ‘이 아이 방에 네 사진이 도배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선수가 오게 된 이유도 수인 덕도 있다고 한다”며 “그 장면을 찍으면서 많은 울림이 왔다”고 했다.
이주영은 수인이 누군가 하지 못한 일의 포문을 열었다는 느낌이 아니었단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자신을 보고 누군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것”이라며 “스스로 맞는지 의심하고 힘들고 고민했던 수인에게 하나의 보상을 받는 느낌 같았다”고 말했다.
이주영은 ‘야구소녀’의 결말에 대해서 “누군가는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결말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며 “하지만 현실적이게 가느냐 그렇지 않게 가느냐를 선택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결국 제작진과 이주영이 내린 결론은 어떻게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 것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깝고 효과적일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이에 내린 결론이 “수인을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야구소녀 이주영. 사진/목요일 아침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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