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아웃포스트’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세워진 전초기지에 대한 얘기다. 전초기지는 ‘침략군이 남의 나라를 공격하기에 유리한 최전방 지역에 설치한 군사 기지’를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프카니스탄 캄데쉬에 건설된 전초기지 ‘캠프 키팅’은 결코 그렇지 않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기지의 지리적 위치를 두고 ‘몰살캠프’라고 부를 정도였다.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협곡 안에 위치한 ‘캠프 키팅’.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위치에 자리한 역설적인 ‘전초기지’다. 탈레반이 활개를 치던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유지된 ‘캠프 키팅’은 놀랍게도 실제 존재했다. 이 영화는 이른바 ‘캄데쉬 전투’의 생존 병사 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미군 병사 53명과 탈레반 400명 이상의 격돌한 실제 전투를 그린다. 이 전투에서 살아 남은 두 명의 병사는 50년 만에 미군 역사에서 생존 병사로는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 영화는 수식이 없다. 수식이 없단 얘기는 구성이 없다. 전쟁 영화 특유의 미화는 더더욱 없다. 가장 극단은 별다른 스토리가 없다. 사실 스토리라고 한다면 ‘생존’이란 단어 하나로 귀결된다. ‘캠프 키팅’으로 전입되는 병사들이 탄 헬기 안. 칠흑같이 어둔 공간 속의 병사들. 두려움도 있고, 기대감도 있다. 여기서 버티면 집으로 간다. ‘전쟁’이란 상황적 배경 속에 인간의 가장 말초 본능인 생존의 위기감은 발동한다. 그들은 버텨야 한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대부분은 같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가족도 있다. 전우다. 동료가 날 지켜줄 것이고, 내가 동료를 지켜야 한다.
도착한 ‘캠프 키팅’ 기괴할 정도로 두려운 공간이다. 미군과 탈레반의 전투가 한 창이던 그 시기. 캠프 키팅의 위치는 군사적 목적을 떠나 생존의 목적성에서도 위배되는 공간이다. 이 곳을 ‘몰살캠프’라고 부른 누군가의 조롱이 허튼 소리가 아니다. 저마다 두렵다. 하지만 이젠 상황은 벌어졌다. 버텨야 한다.
영화 '아웃포스트' 스틸. 사진/조이앤시네마
매일같이 쏟아지는 총탄과 간헐적인 공격. 병사들은 그저 일상이다. 생존에 대한 감각도 차츰 둔감해 질 지경이다. 누군가는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뚫고 탄약을 나른다. 누군가는 홀딱 벗은 몸으로 샤워를 하던 도중 총을 들고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구를 들이 댄다. 이런 상황은 하루 빨리 끝을 내야 한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상황은 지휘관의 성향과 방향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캠프 키팅’의 지휘관은 총 네 명이다. 우선 첫 번째 벤자민 대위는 지역 주민과의 융화를 강조한다. 자신들에게 총탄을 퍼부은 사람들에게조차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캠프 키팅’의 생존을 꾀한다. 하지만 어이 없는 죽음으로 그는 생을 마감한다. ‘캠프 키팅’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상부의 명백한 오판 때문이다. 뒤를 이어 이 기지를 지휘하게 된 알레스카 대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하지만 그 역시 적의 선제 공격에 사망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지휘관은 브로워드 대위. 여러 전투에 참전한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는 수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목격했다. 더 이상의 죽음과 피를 원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대처로 부대원들의 신임을 잃는다. 결국 또 다른 지휘관이 이 기지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신임 지휘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기지의 지휘관은 부대원 중 한 명인 중위가 임시로 맡게 된다.
영화 '아웃포스트' 스틸. 사진/조이앤시네마
그리고 신임 지휘관이 도착하기 얼마 전. 탈레반 400여명이 ‘캠프 키팅’에 대한 전면 공격을 실시한다. 미군과 탈레반의 극심한 대립이 한 창이던 그 시기. ‘캠프 키팅’은 전초기지로서의 목적성과군사적 유리함을 따지기에 상부에서조차 논란이 많았던 곳이다. 폐쇄 결정을 얼마 앞두고 대규모 탈레반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됐다. 이제 ‘캠프 키팅’에 남아 있는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다.
‘아웃포스트’는 그 자체로 ‘전초기지’란 뜻을 담고 있다. 독특한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위치. 방어가 불가능한 오픈 된 공간. 탈레반의 대규모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형. 병력 지원이나 공중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거리적 특성. 이 곳은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이다. 그 안에서 탈레반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잡겠단 무자비한 방식으로 그들을 몰아 세운다.
영화 '아웃포스트' 스틸. 사진/조이앤시네마
영화 전체의 절반은 ‘캠프 키팅’에서의 일상이다. 간헐적인 공격에 대처하는 그들. 각각의 인물 위한 극도로 절제된 서사. 여기에 상황이 만들어 낸 인물들의 대처 방식 등만을 카메라는 바라본다. 별다른 연출도 없다. 그들의 일상은 다큐에 가까운 시선과 연출을 배제한 듯한 움직임으로 ‘폭풍전야’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사실상 이 영화의 전체는 중반 이후 벌어지는 미군과 탈레반의 전투 장면이다. 기존 전쟁영화가 기승전결의 전체 서사구조, 그리고 인물의 개인 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정체라면, ‘아웃포스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반 이후 무려 1시간 가량 이어지는 전투 자체를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어 버린다.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는 먼지가 흩날리고 총탄이 쏟아지는 전투의 한 복판으로 관객을 고스란히 끌고 들어간다. 1시간 가량 벌어지는 영화 속 전투 장면이 사실상 하나의 ‘롱테이크’로 느껴질 정도의 무편집 방식으로 촬영됐다. 이런 방식은 관객들에게 관람이 아닌 완벽한 경험을 선사하는 최고의 방식이다. 스크린에서 흩날리는 흙먼지가 실제 뺨을 때리는 느낌까지 줄 정도다.
영화 '아웃포스트' 스틸. 사진/조이앤시네마
결과적으로 ‘아웃포스트’의 진심은 생존이란 점에선 찬연한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놀랍고도 경악스러운 점은 이 영화가 실제 실화였단 사실이다.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점도 ‘사실’이란 단어 하나였음을 느낄 수 있다. 수식이 없단 설명은 그래서 실제 인물들이 느꼈던 공간의 위압감과 상황의 절망감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낸 이 영화의 결과물이다.
‘아웃포스트’는 이스라엘 출신의 로드 루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국내에선 생소한 감독이지만 2001년 개봉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라스트 캐슬’을 연출한 바 있다.
영화 '아웃포스트' 스틸. 사진/조이앤시네마
영화의 궁극적 묘미는 관람이 아닌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웃포스트’는 2000년 이후 등장한 전쟁영화 가운데 가장 그것에 근접한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진짜다. 개봉은 오는 9월 예정.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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