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현대제철·동국제강·YK스틸 등 제강사들이 장기간에 걸쳐 철스크랩(고철) 구매 기준가격을 짬짜미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영남권·경인권 등 공장소재지 구매팀장 모임과 구매팀 실무자들 간의 정보 교환을 통해 담합을 진행해왔다. 특히 모임 때마다 담합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법인카드 사용을 금지하고, 모임 결과의 문서도 남기지 않는 등 은밀하게 보안을 유지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YK스틸·한국제강·한국철강·한국특수형강 등 7개 제강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3000억8300만원을 부과한다고 26일 밝혔다. 또 공정위는 위원회 추가 심의를 통해 고발 결정 여부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은 2010년~2018년 기간 동안 철스크랩 구매 기준가격의 변동폭(인상·인하·유지) 및 변동시기를 공동으로 결정했다.
철스크랩 시장은 국내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적은 만성적 초과수요 시장으로 제강사간 구매경쟁이 치열하다. 2019년 기준 국내 철스크랩 전체공급량 2929만8000톤 중 국내 발생량은 77.8%(2279만8000톤)다. 나머지 22.2%(649만9000톤)는 수입에서 충당한다.
공정위 측은 “철스크랩 공급업체들은 제강사들이 경쟁적으로 구매 기준가격 인상 시 추가적인 가격인상을 기대해 기대가격 도달 시까지 공급을 하지 않아(물량잠김) 제강사의 재고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YK스틸·한국제강·한국철강·한국특수형강 등 7개 제강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3000억8300만원을 부과한다고 26일 밝혔다. 사진·표/뉴시스·공정거래위원회
이에 따라 제강사들은 ‘철스크랩 기준가격 안정화’라는 큰 틀에서 구매팀장 모임과 구매팀 실무자들 간 철스크랩 구매기준가격 변동계획, 재고량·입고량, 수입계획 등 기준가격 결정에 중요한 정보 교환이 이뤄졌다.
담합은 현대제철의 주도로 공장 소재지에 따라 영남권(2010년 6월~2018년 2월), 경인권(2010년 2월~2018년 2월) 등 2개 권역에 걸쳐 이뤄졌다.
영남권 제강사는 현대제철(경북 포항), 동국제강(경북 포항), 대한제강(부산), 한국철강(경남 창원), YK스틸(부산), 한국제강(경남 함안), 한국특수형강(부산) 등 7개사다. 경인권은 현대제철(인천, 당진), 동국제강(인천) 등 2개사다.
영남권 담합은 2010년 6월~2016년 4월 동안 총 120회의 구매팀장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경인권 담합은 2010년 2월~2016년 4월 동안 총 35회의 모임을 통해 담합을 결정했다.
이들은 김철수, 오자룡, 마동탁 등의 가명을 사용하면서 은밀한 담합 모임을 진행했으나 ‘(기준 가격 인하를 통해) 시장을 흔들어 줘야 한다(YK스틸)’, ‘26일 인하하자(한국특수형강)’ 등이 제강사 구매팀 직원의 업무 수첩에 적혀있었다.
경인권 담합의 경우는 현대제철·동국제강 외에도 세아베스틸·KG동부제철·환영철강공업이 혐의를 받았으나 증거가 드러나지 않아 조처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업체별 잠정 과징금은 현대제철 909억5800만원, 동국제강 499억2100만원, 한국철강 496억1600만원, YK스틸 429억4800만원, 대한제강 346억5500만원, 한국제강 313억4700만원, 한국특수형강 6억3800만원을 결정했다.
김정기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제강사들 간 장기간에 걸쳐 은밀하게 이뤄진 담합을 적발해 제재한 것”이라며 “철스크랩 구매시장에서 제강사들이 담합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해온 관행을 타파하는 등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품·소비재 등 국민생활 밀접분야 외에도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원·부자재 담합에 대한 점검도 강화할 것”이라며 “담합 적발 시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철 스크랩은 철강 제품 생산·가공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나 폐가전제품·폐자동차 등 폐철강 제품을 수집해 선별한 고철을 말한다. 철스크랩은 고철을 수집하는 수집상(소상)→수집된 고철을 집적하는 중상→납품상(구좌업체)을 거쳐 제강사가 납품을 받는 구조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