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마비 손해배상, 피해자 과실 계산보다 건강보험 공제가 우선"
피해자 과실로 발생한 치료비 일부도 공단이 부담하도록 판례 변경
2021-03-18 16:52:21 2021-03-18 16:52:21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교통사고 피해자 치료비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제는 과실계상(피해자 과실 반영)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과실상계를 먼저 하고 공단 보험급여를 공제할 경우 피해자 손해가 늘어나므로, 피해자 과실에 따른 치료비 일부도 공단이 부담하도록 판례가 바뀌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8일 A씨가 가해자 B씨와 보험사 등을 상대로 낸 보험금 등 청구 소송에서 공단의 대위(대신 권리 행사) 범위에 대한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공제 후 과실상계'로 바꾸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B씨는 고등학생이던 2012년 6월 용인시에서 혈중 알콜 농도 0.061%인 상태로 친구 C에게 빌린 무등록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70km로 달렸다. B씨는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횡단보도 인근 도로를 건너던 A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A씨는 경부척수 손상을 입어 사지가 마비됐다.
 
A씨가 가입한 보험사는 그에게 정부 보장 사업에 따른 책임 보험금으로 약 6000만원을 지급했다. 무보험 자동차 상해보험에 따른 보험금으로 병원에 1억1700여만원을, A씨에게 가지급금 2900만원을 지급했다. B씨 부모는 A씨에게 개호비 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A씨는 오토바이를 운전한 B씨와 이를 빌려준 C씨, B씨의 보호·감독을 소홀히 한 부모가 공동해 5억29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A씨가 가입한 보험사에 대해서는 정부보장사업 지원금액과 무보험 자동차 상해보험 지급액을 공제한 3억6400여만원을 요구했다. A씨는 사위와 딸이 각각 가입한 보험사가 B씨·부모·C씨 연대로 1억여원과 1억5600여만원씩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B씨와 C씨, 보험사 세 곳이 연대해 2억5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보험사들이 낼 금액은 360여만원으로 책정됐다.
 
재판부는 A씨가 야간에 사고 장소 부근 횡단보도에서 떨어진 거리에서 도로를 건넌 과실을 20%, 피고들 책임 범위를 80%로 나눴다. B씨 부모의 감독 의무 위반은 사고와 관련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기왕(지출한) 치료비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은 피해자가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그 손해 발생에 피해자 과실이 경합된 때에는 먼저 산정된 손해액에서 과실상계를 한 다음 거기에서 보험급여를 공제해야 한다"고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2심은 배상액을 늘렸다. 재판부는 B씨와 C씨가 공동으로 3800여만원, B씨 부모는 두 사람과 공동해 2억9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왕치료비 산정 방식은 1심을 따랐다.
 
반면,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이 따른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사고가 수급권자의 전적인 과실로 발생했을 경우에도 수급권자는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고 공단은 비용을 부담한다"며 "손해가 제3자의 불법행위와 수급권자의 과실이 경합해 발생한 경우에도 '공단부담금 중 적어도 수급권자의 과실비율'만큼은 공단이 수급권자를 위해 본래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고 보아 공단의 대위 범위를 '공단부담금 중 가해자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종전 대법원 판례와 같이 공단부담금 전액에 대해 공단이 우선해 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고 보면, 실질적으로 공단이 본래 부담해야 할 수급권자의 과실비율 부분을 수급권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며 "그 결과 제3자의 불법행위가 없었던 경우에 비해 공단은 유리해지고 수급권자는 불리해진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사진/대법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