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강원도 최전방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했다. 포병은 화포로 적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다. 그래서 흔히 포병은 적을 향해 포탄과 미사일만 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병에서 정말 중요한 건 '관측'이다. 관측은 적의 위치와 성질을 파악하고 부대에 적 좌표를 송신, 포탄을 정확히 유도하는 일이다. 관측을 잘해야만 적을 때릴 수 있다. 관측이 없으면 포병 임무를 시작할 수 없다.
정치부 기자가 갑자기 포병과 관측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최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목격되는 '좌표찍기' 때문이다. 좌표찍기란 특정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정치인과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거짓정보를 유포하거나 악성댓글을 쓰는 등 무차별 공세를 펴는 것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기타 인터넷 게시판 등에 공격 대상을 '찍고' 우르르 몰려가 악성댓글을 단다고 해서 좌표찍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민주당 경선 과정에선 두 가지 일이 주목을 끌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한 지지자는 메신저 단체방에서 이낙연 의원을 겨냥해 네거티브 공세를 주도했다. 이 의원을 지지하는 한 유튜버는 본인 유튜브에 이 지사의 '형수 욕설' 동영상을 올리고, 페이스북에선 '반이재명'을 주창했다. 이런 것도 좌표찍기의 한 형태다. 일부러 훈련 받았나 싶을 정도로 좌표찍기는 조직적이고 위력적이다.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선 '편하게 기사를 쓰고 싶다'면서 좌표찍기의 무서움을 토로하는 기자가 등장했을 정도다.
정치인 입장에서 좌표를 찍는 강성 지지자들은 강력한 우군이다. 정치인이 공인의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네거티브를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은 좌표찍기를 '민의', '민심'의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좌표찍기 지령을 캠프에서 하달한다'는 소문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좌표찍기는 설사 그것이 민의와 민심일지라도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 반대를 위한 반대, '나만 옳다'는 주장과 인신공격성 댓글은 반지성주의와 맞닿았다. 좌표찍기를 지켜보는 국민은 정치에 피로감만 쌓이고 정치 혐오로 이어진다.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좌표찍기와 결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부터가 상대방에 합리적 문제 제기를 하고 토론과 건전한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패거리를 몰고 다니며 좌표찍기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건 당장의 지지율만 급급해 두 수 앞을 보지 못하는 하수의 전략이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그랬고, '손가락혁명군'이 그랬듯 경선 후 민주당의 원팀 결집에도 악영향만 준다.
포병의 목적은 적의 머리 위로 포탄을 쏴서 적을 궤멸하는 것이다. 관측(좌표찍기)은 적의 멸망을 위해 존재한다. 비록 선거가 최후의 1인을 뽑는 과정이지만, 정치는 '너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전쟁이 아니다.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권력을 분배하고 협력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후보들은 좌표찍기와 결별하라.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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