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달 29일 최근의 부동산가격과 관련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최근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불안해지자 국토교통부장관과 금융위원장, 그리고 경찰청장까지 대동하고 나선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최근의 부동산가격 상승이 여러 요인이 겹쳐서 일어난 것이라면서 특히 주택 공급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충분한 공급이 시장안정의 첩경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앞으로 양질의 주택이 신속하게 공급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가 밝힌 주택공급 상황을 보면 물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올해 입주물량이 전국 46만호 서울 8만3000호에 이른다. 이는 과거 10년간의 평균입주물량인 전국 49만9000호 서울 7만3000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또 2023년 후에는 해마다 50만호 이상이 공급될 것이라고 홍 부총리는 내다봤다. 아마도 2.4대책 등에 따른 주택공급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인 듯하다. 이어 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도 앞으로 10년 동안 전국 56만호, 수도권 31만호, 서울 10만호가 공급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이렇게 부동산 공급상황을 구체적인 숫자까지 나열하면서 설명하면서 시장안정을 호소했지만, 응답은 없다. 아파트 매매와 전세가격 모두 오름세를 멈추지 않는다. 정부당국자들이 보기에 기막히고 억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공급'의 개념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장이 요구하는 공급이란 무조건 신규 분양을 늘리라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재고주택이 우선 활발하게 유입되면서 선순환구도가 형성되기를 요구인 것이다. 물론 신규공급도 충분해야 한다. 그렇지만 신규공급되는 물량도 시장의 선순환 구도 속에 흡수되어야 전반적인 시장안정에 기여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물량공급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공급되는 물량이 넉넉하다는 사실을 너무 믿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다른 물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물신주의는 정부의 여러 정책을 통해 흔히 나타난다. 이를테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100조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정책이 2000년대 초반부터 무수히 되풀이됐다. 올해도 47조7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렇지만 출산율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이제는 사망자보다 출생자가 적어 인구감소 시대에 접어들었다.
꼭 필요한 사업에 정확히 투입해야 하는데, 무조건 예산을 쏟아부은 탓이다. 이를테면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진단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고 누구나 느낀다. 기성세대는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왔고,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스스로도 힘들다. 그 결과 앞날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한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작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이나 주거, 불안한 노후생활 등 그런 두려움을 조장하는 요인들이 즐비하다. 두려움을 불식시키고 한국사회의 보호와 후원을 받으면서 자식을 건실하게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노력도 없이 무조건 예산을 퍼붓는다고 결혼과 출산율이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일부 대선 주자들이 수천만원대의 청년지원 정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를 지급하거나 군을 제대할 때 몇천만원을 무작정 준다고 과연 무엇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자칫하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재정에 부담만 줄지도 모른다. 이 역시 무조건 돈만 퍼주면 된다고 착각하는 물신주의의 또다른 단면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 한국 경제와 재정의 규모가 커지고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산이 상당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치밀한 계획이나 효율을 결여한 채 함부로 돈만 뿌리면 밑빠진 독이 될 수도 있다. 부동산정책이든 인구정책이든, 일자리정책이든, 또는 그 어떤 정책이든 마찬가지이다. 물신주의에 젖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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