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 3일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이 제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원화대출은 11.7%나 늘어났다. 2019년 6.2%에서 2배 가까운 수준이다. 명목 국민총생산(GDP)증가율은 1.4%에서 0.4%로 하락했는데도 대출증가율은 도리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이같은 불균형의 요인으로는 극단적 저금리와 부동산가격 급등,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출급증세는 올해로 이어졌다. 그 결과 부동산가격은 더욱 뛰고 재벌계열사의 상장에 대규모 시중자금 몰리는 등 자산가격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지난달 16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1조568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670조원보다 4.7% 늘었다. NH농협은행은 7.4%나 늘어났다. 하나은행 (5.04%)과 국민은행(4.37%)도 작지 않게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를 6%선에 묶어두려고 했다. 지난달 3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만난 자리에서도 가계대출 증가목표를 6%대로 설정했다.
올해 한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이 4%선에 이르고 물가도 2%안팎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의 목표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이런 목표마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는 판단한 듯하다. 목표도 목표이지만, 한국의 금융시장을 좌우할 4대기관의 수장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서 정부의 조바심을 엿볼 수 있다.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가 위험하다는 데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에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미 은행들에게 마이너스대출을 비롯한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도록 한데 이어 풍선효과를 막을 대책도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SR) 강화방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과 카드 보험 등 제2금융권 대책도 시급해졌다. 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을 포함해 돈을 빌려주는 모든 금융사들이 규제대상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기대하는 가계대출 억제가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카드사에게 카드론 대출을 억제하라고 하는 등 금융당국이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다.
당국의 대출개입은 분명히 '관치금융'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초저금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필요악’이라고 봐줄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호주에 집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를 규제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대출억제 정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외견상 숫자로 표시되는 것만 가지고 성공여부를 판단해서도 안된다. 큰 후유증이 없이 진행돼야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큰 후유증이 빚어지고 있다. 대출을 받기로 하고 집을 구입하거나 분양받은 실소유자, 전세계약자 등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뒤에서 총맞은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래서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진다. 뒤늦게 전세대출을 다시 허용하고 총량규제도 다소 후퇴하는 듯하다.
이렇게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정책으로 국민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부동산정책을 20여차례나 내놓았다가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하는 듯하다. 또 어떤 미봉책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런 혼란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금리를 필요한 만큼 올려 풀려난 시중자금을 걷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금리인상으로 인한 급속한 경기악화가 두려워 당장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현명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계대출 급증을 유발하는 부동산가격 상승이나 전세값 급등을 막을 근본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무리한 고율양도세를 완화하는 등 잠겨있는 주택이 시장에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그런 근본적인 처방은 외면하고 허둥대기만 한다.
정부는 지금 들리는 아우성을 예상이나 했을까? 아마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실수요자의 피해를 막으면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멈추게할 연착륙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허둥대는 모습 국민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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